한국일보

평양은 지금 25시

2010-12-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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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5시의 저자 게오르규(1949년 출판 루마니아)는 25시적 시공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최후의 시간에서 한시간이 더 지난 시간, 즉 메시아가 다시 강림한다 해도 아무런 구제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요, 인간이 각성을 거부할 때 야기되는 비상식이 상식으로 굳어지는 공간이다". 평양은 지금 25시다. 죽기에도 살아가기에도 구원을 받기에도 너무나 늦은 시간! 평양의 식민지 조선의 시각은 빙점에서 동파해 버린 0시다.

이판사판!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벼드는데는 겁도 나고 화가 나다가도 그들이 누구인가! 같은 다식 판으로 찍어낸 붕어빵이요, 동족의 분신이라 깨우칠 때 슬프고 남보기 부끄럽다. 가난하지마는 콧대 드센 동생이 쌀말 얻어가면서 대문 박차고 나가는 그 심정, 이해하지 못한다면 형제가 아니지!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가난뱅이 주제에 꼴값한다고 소금 뿌려대는 마누라가 야속하다. 불과 2년전의 일이다. 연인원 80만명이 이웃집 나들 듯이 휴전선을 넘나들었다. 이미자가 평양에서 ‘동백아가씨’ 부르고 부산해운대 아줌마가 백두산에 올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쳐댔다. 김일성대학 축구팀이 대구에서 한판 붙고 평양 여학생 응원단원이 대구사나이와 연애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것들은 유언비어요 아니면 딴 나라 일이었던가! 똑같은 국가정부에서 하는 일인데 정권따라 사람따라 이토록 쉽게 손바닥을 뒤집어도 되는건지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수구보수진영에서 그렇게 배를 아파했던 퍼주는 것! 한번 생각해 보자. ‘원조’를 속물적으로 왜곡시킨 퍼 준다는 데는 퍼주는(국가, 단체, 개인)당사자의 정서9정책, 의도, 사랑 등)가 자연스럽게 묻어가기 마련이다. 굶주린 조선인민이 한국에서 퍼주는 쌀로 배불리 먹고 또는 수재민 구호미에서 빼돌린 경기미로 배를 채운 인민군이 밤하늘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쌀밥 먹여주셔서 김정일장군님 고맙습니다" 하겠는가 아니면 "우리는 왜 이렇게 못사는가" 하겠는가!

인간이 절대 빈곤할 때 머리는 절대복종으로 굳어지고 창자가 만족할 때 사람의 머리는 상대적으로 발전한다. 한국적 자유의 정서가 흠뻑 묻어있는 쌀을 먹고 인민과 인민군은 지금 마음을 남쪽에 퍼주고 있는 것이다. 퍼주는 마음은 집단적 동질성으로 성숙하여 필연적으로 민주항쟁으로 노도와 같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생각을 이북의 실상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망상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도 지독한 30년 군사독재하에서 마산의거. 4.19혁명, 부마(부산, 마산)의거, 광주항쟁, 6월항쟁 등 줄기찬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거쳐 오늘의 영광을 쟁취한 것이다. 김일성왕조 타도도 필연적으로 한국과 같은 전철을 밟아야 할 것이다. 민심은 수성(물과 같은)이다. 수성은 불을 끄고 태산을 무너트린다.

진시왕이 만리장성을 쌓고 17년만에 망했다. 또한 저 유명한 프랑스의 마지노선도 단 3일 만에 무너졌다. 한민족의 허리를 가로지른 3.8선 60년, 그러나 역사앞에 60년은 티끌에 불과하지 않는가. 한민족의 장기, 인내로 극복해 나가자.

백춘기(자유기고가/골동복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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