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식도락가의 천국 뉴욕에...

2010-1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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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병 임(논설위원)
“뉴욕에서 먹는 냉면이 서울에서 파는 냉면보다 맛있어. 한국 음식 때문에 도저히 뉴욕을 떠날 수가 없어.” 이렇게 한인들은 뉴욕에 사는 큰 장점으로 한국 음식을 든다.2010 한국일보 업소록에 의하면 맨하탄에 한국식당(일식, 중식도 포함) 53개, 퀸즈 지역에는 142개가 있다. 이곳의 주방과 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한인들은 하루종일 주방에서 손이 퉁퉁 부르트도록 새우를 까고 칼날에 상처가 나고 불과 기름에 데이면서도 종자돈을 모아 언젠가는 자기만의 식당을 열겠다는 푸른 꿈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 여는 식당들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경기 침체는 매달 새로운 식당이 문을 열었다가 소리 없이 문을 닫고 하루아침에 업종이 바뀐 간판이 달리기도 한다.하지만 한식은 여전히 고국을 떠난 한인의 입맛을 달래주며 이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인 비즈니스의 주종 업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전해졌다. 맨하탄 플래그쉽(Flagship) 한식당 사업이 2011년 예산안에 포함돼 지난 8일 강행 처리되면서 예산이 확정된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한식 세계화 사업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맨하탄 한식당 예산 50억원을 비롯한 한식세계화 예산 242억 5,000만원이 포함됐다.

세계 주요도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당을 개설하는 이 프로젝트는 내년 중 맨하탄에 50억원 규모의 첫번째 식당을 오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식당 설립은 정부 부담, 운영은 국내 또는 현지 전문한식경영업체에 위탁한다는데 그 누가 주인처럼 잘 할 것인가? 그 특혜를 받는 자는 개인인가, 재벌 기업인가? 식도락가 천국인 뉴욕은 이태리, 프랑스, 멕시코는 물론 인도, 카자흐스탄, 방콕, 오스트리아, 아프가니스탄, 가나, 그 외 레바논, 이스라엘, 파키스탄 음식까지 5대양 6대주의 민족 고유의 음식
과 그로서리가 널려있다. 그런데 그 많은 민속 식당과 그로서리에 정부가 개입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전세계에 체인점을 확장 중인 맨하탄의 일본식당 ‘노부’(Nobu)는 요리 중간가격이 120달러의 고액임에도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일본인 요리사 노부 마츠히사가 뉴욕의 식당 운영자 드루 니포렌트와 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투자를 받아 최신 트렌드 형식으로 문을 연 노부는 식당 오픈 전까지 오랜 준비기간을 거쳤다. 해외 여러나라에 거주하면서 현지인들의 일본음식에 대한 취향을 조사했고 일본 재래식단을 토대로 세계인의 눈· 코· 입을 만족시키는 맛을 새로 개발했다. 식재료도 일본에서 매일 아침 비행기로 공수되고 있다.여기에서 절대 빠지면 안되는 것이 장인 정신이다. ‘노부’라는 장인 자체이다.

국민의 혈세로 엄청난 렌트를 내는 맨하탄 최고 지역에 최고급 한국적 시설, 최고급 인력으로 식당을 연다고 하자. 한국식당의 장인은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 한식재단 대표, 뉴욕 파견 공무원, 한국에서 초빙된 요리사? 그들을 보고 뉴요커들이 그 식당에 갈까? 괜히 돈 쓰고 힘 빼고 낭패만 보지말고 이왕 받은 예산 50억원은 기존의 한국 식당과 새로 문 여는 한국식당을 적극 후원하는 것은 어떨까. 토종 한국요리에 최신 트렌드를 가미한 메뉴 개발은 물론 한식 영문 표기 표준화, 외국인 선호 식단 선정, 한식 셰프 한국 연수, 된장·간장·고추장 품질 인증 및 규격화, 선정된 최고 한식당에 최고급 한국식 인테리어 바꿔주기와 포상금 수여 등 할 일이 많을 것이다.

한식 세계화는 한국식당이 많은 대도시보다는 한식당이 없는 지역을 중점으로 장기적으로, 서서히 해야한다. 이미 맨하탄의 소문난 한식집에는 타인종 손님들이 한인보다 훨씬 많다. 뉴욕에 사는 우리가 고국의 정부와 비빔밥 한그릇을 두고 머리 터지게 싸워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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