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보세요”

2010-1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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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석 빈(교도소 심리학자)
전화가 오면 우리는 “여보세요” 라고 대답한다. 말하자면 여보세요는 우리 한국인의 전화 받는 말이다. 스와힐리어를 쓰는 아프리카에서는 전화가 오면 “쟘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쟘보는 스와힐리어의 인사말인데 그 말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무 상관없다(nothing the matter)”라고 한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물론 전화가 오면 “헬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처음 전화가 보급되었을 때 사람들은 전화대답을 헬로라고 하지 않고 “아호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호이는 선원들이 출항할 대와 항해중 바다에서 지르는 소리인 일종의 해상용어이다. 등산꾼들의 “야호”라는 소리와 비교할만한 표현이다.

소련사람은 전화에 “할로’라고도 대답하지만 대체로는 “슐루사유”라고 답한다고 한다. 슐루사유의 뜻은 “나는 듣고 있다’라고 한다. 이탈리아어에서는 “알로”대신에 “뿌론또”라고도 하여 “준비됐다”라는 뜻을 말하고, 그리스 사람의 전화대답 “엠부로스”는 “들어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본사람은 또 “모시모시”라고 대답하고, 중국에서는 “웨이’라는 소리로 전화대답을 한다. 모시모시는 “실례 실례(excuse excuse)”라는 뜻이고 “웨이”는 중국사람들이 가축동물을 향하여 어서 와서 먹이를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한국어의 전화 받는 말 “여보세요”는 분명히 그 뜻이 “여기를 보라”요, 그 표현의 동의어로는 여보, 여보쇼, 여봐라, 여기좀봐요 라는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동의어 중에서도 “여보세요”만이 올바른 전화대답이 된 것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특수 언어표현의 규례와 관습이 섰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관습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여보세요”하든지 “쟘보”와 같은 말이 전화 받는 말로 채택이 된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무의식중에 그렇게 됐다고 하여도 여러 말 중에서 하필이면 왜 바로 그 말이 채택되었을까에 대하여 우리는 흥미있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도 모르고 또 상대가 여기를 볼 수 없는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여기를 보라고 “여보세요”라고 대답하는 마음의 근본태도는 “이 바보 같은 사람아, 딴전 피지 말고 내 말을 똑똑히 들으라”라고 할 수 있고, “쟘보”의 뜻은 “괜찮다”이므로 그러한 말로 대답하는 사람의 마음 바탕은 결국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았는가? 무슨 말이든지 다 들어줄
터이니 안심하고 말하라”라고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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