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후의 툰두라

2010-12-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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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윤실 호루라기

한국의 SBS 방송은 최근 ‘최후의 툰드라’라는 다큐멘터리(4부작)를 방송했다.

섭씨 영하 6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족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순록들과 더불어 얼음 속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이들이다.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순록떼를 뒤따르며 사는 툰드라 원주민들은 순록을 잡아 고기는 주식으로, 가죽은 옷 또는 주거용 천막을 짓는 데 사용한다.

순록의 내장을 모두 꺼낸 뒤 온 식구가 순록 옆에 오순도순 모여서 그 피를 나누어 마신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법한 아이들도 마치 도시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듯 따뜻한 피를 마시고 입가의 순록피를 닦아내며 천진한 웃음을 짓는다. 동토의 땅에서 얻기 힘든 비타민 C와 철분을 공급하는 가장 좋은 음식이 순록의 피라는 나레이터의 설명이 없다면 마치 흡혈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문명생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충분히 야만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대규모 순록 수렵 가공회사들이 툰드라를 침범해 이 생활방식이 조금씩 위협 받고 있다. 가공회사 창고에는 전문 사냥꾼들이 잡은 수백 마리 순록의 주검들이 쌓여 있다.

기계화된 공정에 의해 가죽은 가죽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뼈는 뼈대로 분리된다. 그리고 그 땅 주인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한다.

원주민들에게는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던 순록이었다. 이들은 순록의 머리를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물로 쓰면서 귀한 식량이 되어준 순록에게 최대의 예의를 갖춘다. 그러나 수렵회사에서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필요 없는 것은 버려진다. 얼마 가지 않아 원주민들은 버려진 것들로 생활을 연명하는 빈민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과연 누가 문명이고 누가 야만일까?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피를 마시는 원주민들과 수렵으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회사 중 누가 교양 있는 쪽인가?

툰드라 원주민들 중에는 산에서 사는 순록들을 잡아먹고 사는 이들도 있다. 수천마리의 순록떼를 따라 다니는 부족이나 몇 마리 안 되는 순록을 잡아먹고 사는 부족이나 생활양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눈앞에 보이는 순록떼가 중요한 것이 아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순록떼를 따라 다니는 부족과 달리 산 속의 부족들은 언제 또 순록을 보게 된다는 기약이 없다. 추운 땅이기에 보관에 문제가 없음에도 그들은 욕심을 내지 않고 일용할 양식만큼만 잡는다. 이유는 사냥을 나서기 전 샤먼(무당)이 욕심을 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욕심을 내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 무당의 가르침이란다.

이 모습 또한 문명인을 상대로 목회하는 내 머리를 내려치는 것과 같은 충격을 주었다. 기독교인들이 미신이라고 분류하는 샤머니즘이 욕망을 제어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 교인들은 이것을 충실히 이행하는데 오늘 기독교라는 ‘고등종교’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며 더 많이 가진 자가 복 받은 자라고 선포한다.


욕을 하면서 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가득 찬 한국의 ‘막장 드라마’들도 결론에 가서는 욕망의 덧없음을 교훈적으로 보여 주는데 오늘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복’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키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공간이 교회다.

일용할 양식 앞에 천진한 웃음을 짓는 툰드라 사람들의 눈에 우리는 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욕망을 향해 치닫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일 뿐이라는 생각에 툰드라의 샤먼에게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김 기 대
목사·평화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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