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리더십 DNA

2010-12-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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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박칼린은 ‘리더십의 원전’이다. 즉 본보기라는 뜻이다. 오합지졸을 두 달만에 그럴듯한 합창단으로 승격시켰다. 우연히 그녀가 개별적인 심사를 거처 단원 선발하는 과정을 본 다음부터 어느덧 필자 자신도 그녀의 추종자가 되었다. 그녀의 리더십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치밀하고, 끈기 있고, 개성적이면서 각 단원의 능력과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매력이 있다. 그녀는 합창지도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단원들을 즐겁게 하였고 그들에게 음악 이상의 값진 것을 심어주었다.

사회는 리더십에 눈을 떴다. 리더십에 대한 강의가 열리고, 이를 키우려는 학습장소도 있다. 그런데 ‘왜 모두 리더가 되려고 하는가’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리더가 되는 일은 멋있는가. 리더는 우쭐한 느낌을 주는가. 리더는 많은 이권을 차지할 수 있는가. 리더는 사회의 명사인가... 등등의 이유로 리더가 되려고 한다면 우선 기본 자세에서 실격자이다. 리더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리더가 탄생한다. 따르는 사람들인 추종자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리더가 선출된다. 때로는 새로운 그룹이 생기면서 거기에 적합한 리더를 공채 하는 경우가 있다. 왜 이렇게 좋은 리더를 구하려고 노력하는가. 시중에는 어느 개인이 성취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여럿이 일을 함께 하려면 리더가 필요하게 된다.


리더의 자격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동기유발을 하면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과 기술을 집합하여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감화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리더십의 유무는 일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그룹에는 리더만 있는 것이 아니고, 추종자들도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리더십과 함
께 추종자의 정신이나 능력도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리더는 추종자였을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일할 수도 있다. 그룹에서는 리더와 추종자들이 함께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 리더는 어디서나 언제나 만년 리더인가. 사람은 만능이 아니다. 운동경기의 리더가 학술세미나의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리더와 추종자의 사이를 오가며 삶을 더 재미있게 사는 지혜가 있다. 이런 체험을 쌓을 수 있는 장소가 성장기의 학교 생활이다.

노는 시간이 되어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친구 A에게 모인다. 게임의 리더는 A이기 때문이다. A는 게임을 지도하고 승부를 정확하게 판단한다. 과학시간에 실험이 시작되면 B가 리더이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실험기구를 나누고, 그룹의 실험과정을 살피며, 뒤처리를 할 때의 작업 분담을 알려준다. 학급에서 모임이 있을 때 의제를 예고하고 토의시간에 사회를 보는 것은 C의 일이다. 오락회가 있을 때는 D가 중심이 되어 모두를 즐겁게 참가시킨다. 어쩌다 친구끼리 서로 다툴 때는 영락없이 E가 나서서 옳고 그릇됨을 알리고 양편을 타이른다. 학생들은 이런저런 학교생활에서 여럿이 어울리며 생활하는 방법을 익히고 때로는 리더가 되었다가, 때로는 추종자가 되는 일을 반복하면서 자란다.

리더십도 변화하면서 성장한다. 개인이나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리더십이 변화함은 자연스럽다. 근엄한 위풍, 강력한 권세, 고매한 학설, 막대한 재정적 뒷받침, 거침없는 언변 등은 더 이상 리더십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목표 설정과, 그것을 이해시킬 수 있는 언변과, 앞장서서 이끌 수 있는 추진력이 있으면 리더의 기본조건이 된다. 크고 작은 많은 리더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그룹을 이끌 때 세상의 색깔이 더 아름다워진다. 한국 내에 맑은 물줄기를 흐르게 한 박칼린이 이번에는 누군가와 함께 듀엣을 할 예정이란다. 그녀의 이런 변화는 또 다른 메시지를 준다. 리더십은 고정적이고, 영구적인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고,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확대하는 방법이며 독특하고 귀한 기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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