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 둘 나쿠, 씨유 어갠?”

2010-12-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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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약 17년 전, 한국에서 누님과 자형이 어머님과 함께 미국구경을 하려고 방문하신 적이 있었다.

어머님은 전에도 몇차례 미국을 다녀 가셨었지만 누님과 자형은 그때가 생전 처음으로 방문하는 미국 나들이었다. 누님의 외동딸이며 나에게는 외조카인 미정이가 컴퓨터 엔지니어와 결혼하여 샌 호세에 새살림을 차리게 되자, 외동딸의 신접살림 구경도 하고 미국구경도 할 겸해서 겸사겸사로 오게되었다.

세분들은 북가주의 중심지인 샌 프란시스코를 시발점으로 하여 미정이가 살고있는 샌 호세,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로스 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근 2-3주 동안, 단체 관광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캘리포니아주를 종횡으로 누비며 레이크 타호, 요세미티, 세코이야 등은 물론이고, 라스 베가스와 그랜드 캐년까지 가서 시종 유쾌하고 즐거운 관광을 즐긴 후에 나의 집에 도착하였다.

우리 부부와 당시 고등학교 재학중이었던 나의 딸 진이와 아들 만승이가 함께 세분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우리 집에 사흘간 머물면서 우리들은 낮에는 디즈니 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 관광지를 구경하러 다녔고 밤에는 미정이의 신혼살림 이야기와 한국의 다른 형제자매들, 그리고 조카들의 이야기로 한동안 요란하고 푸짐하며 뻑적지근하게 며칠을 보냈다.


특히 자형은 캘리포니아주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난 소감이 너무나 생생하고 재미가 좋으셨는지, 그 당시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방 감탄과 익살이 섞인 표현으로 좌중들을 곧 잘 웃겼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며칠을 보내고 다시 샌 호세 미정이네 신혼 살림집으로 떠나는 날 아침, 진이와 만승이가 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고모부를 전송하려고 집앞에 서서 포옹과 작별 인사를 한 후, 차가 떠나기를 기다리는데 자형이 차의 앞좌석에 올라 앉으면서 진이에게 아주 오랫동안 궁리하고 생각해서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I’d like to see you again”이라고 웃으면서 영어로 말하였다.

그러나 그 영어발음이 어찌나 딱딱하고 액센트가 강했던지 진이는 선뜻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진이는 자형이 한국말을 하는 줄로 알았던 모양이었다. 자형은 멋적은 듯이 웃으면서 얼른 똑같은 말투와 억양의 영어로 다시 한번 더 또박또박 되풀이하여 말하였다.

그러자 진이는 매우 당황하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화난 목소리로 옆에 있던 나에게 물었다. “아빠! 지금 여기 고모부가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거야?! 나를 보고 “아이 둘 나쿠 또 만나자!”라니 그게 나한테 무슨 말이야!?”하면서 잔뜩 노여운 표정을 지었다. 순간 모두가 다들 “뭐!? 뭣이라구?”하고 놀라서 서로 마주 보다가 그만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곰곰이 들어보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찌나 황당하고 우스운지, 모두가 다들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숨마저 막혀서 헉헉거릴 정도로 서로를 쳐다보며 정신없이 웃었다.

진이는 왜 모두가 다들 그렇게 웃는지 영문을 모른채 아직도 노여운 표정을 풀지 않고 우리들을 흘겨보았다. 한동안 그렇게 웃다가 누님이 겨우 숨을 가다듬고 자형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니 여보! 당신 지금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것도 아니고, 미국 사람 앞에서 어설픈 영어하다가 자칫하면 뺨맞게 생겼수-“하고는 얼른 진이에게 해명을 하라고 하였다.

자형은 그만 무안해서 얼굴이 벌개진 채 “진이야 미안하다. “다음에 또 만나자”라는 말이였어”라고 변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도 우스웠던지 입을 다물지 못한채, 연방 입가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에 바빳다.

진이도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는 “그래요 고모부 다음에 또 오세요”하고 마주 웃었다. “자형! 다음번 오실적에는 영어발음 좀 고치시고, 씨유 어게인! 오케이?!”

-그러나 자형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310)968-8945


키 한
뉴스타 부동산 토랜스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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