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학의 비애

2010-12-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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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태(시인)
잡문이나 쓰면서 문학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푸념이나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시인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쓴 글이 명작쯤 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사는 동네의 산길을 걷다보니 오히려 지나가는 구름 저쪽 먼 곳에 문학이 가득차 있고, 졸졸졸 흐르는 실개천이나 거대하게 흐르는 허드슨 강에 철학과 사상이 있고, 바람이 만지고 지나가는 나무 많은 숲속에 시와 수필이 가득 차 있다. 부끄러웠다.

이번 가을의 단풍은 유난히도 붉고 노랗게 익어서 나는 부끄러워 차마 눈도 크게 못 뜨고 산길을 가다말고 그 나무들 앞에 꿇어 앉아 나의 잘못을 용서하라고 울었다. 나는 문학인이 아니었고 문학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쓴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나의 허물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아름다운 인류는 아름다운 인류로 남게 해야 하고 순수한 문학은 순수한 문학으로 남게 해야 한다. 말장난이나 형용사 단어 몇 개 집어 들고 인간을 농락하려 들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문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뉴욕에는 유난히도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많다. 자칭 시인도 많고 자칭 수필가도 많다. 무수입 예술가, 무수입 문학가들이다. 의술은 돈을 잘 벌게 하는데 예술은 왜 한 푼도 수입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가? 작품으로 생활이 영위가 되어야 그 작품이 가치가 있다. 가치 있는 작품은 시리고 시린 삶의 고민과 용광로 속에서 끓는 쇳물과 같은 몸부림에서 떨어지는 작가의 결산이다. 이름 석 자만 보아 달라고 내미는 작품들은 외면이 당연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책을 자비로 출판하고, 원고료도 한 푼 받지 못하는 잡문을 쓰면서 “나는 문인입니다“ 하면서 스스로 취해서 건들거리는 사람들이 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소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생각을 깊이 해 보아야 할 일이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나 워즈워즈, 룻소 등 문학사에 발자취를 남긴 대 작가들은 문학단체에 가입하지 않고서도 명작을 쏟아냈다. 문학이 진정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문학을 한답시고 비싼 회비를 내가면서 아무런 연구와 정서도 없이 이책 저책에서 긁어낸 내용을 잔칫 상에 올려놓아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문학단체에 휩쓸리며 문학을 한다는 자만은 잡초에 불과하다. 또한 양식이 될 그 옆의 나락 달린 벼를 죽인다. 문학! 문학은 외로운 길이고 순수한 길이다.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거나 이 부도덕한 사람은 순수한 문학에 접근할 수 없다. 진정하게 문학으로 접근해 가는 사람은 방법과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문학의 길에는 겉으로는 허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속으로는 존경하는 마음이 이는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한 두 사람 정도의 문도(文徒)만 있으면 족하다. 인생 쓸모없이 헛되게 다 소비하기 전에, 아니, 문학은 적어도 작은
감동이나 뒤끝이 없는 티끌만한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문학(文學)이 무낙(無樂)이 되기 전에 부끄러운 허세를 버리고 순수문학을 순수 그대로 남게 하는 것도 양심상의 마지막 도리일 런지도 모른다.
현대의 정서는 문학의 정서가 멀어진 시대다. 그래서 끼리끼리 몇 사람만이 소위 문학 잔치에 참석할 뿐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 허전함 그 자체다. 문학은 철저하게 시대감각이 요구되는 예술이고 학문이다. 가면 갈수록 멀어져가는 현대감각과 문학의 정서, 무서운 속도로 앞서가는 현대감각에 과연 자기 얼굴 치장에 목적이 있고, 태만하고, 속도가 느린 문학의 정서가 인생에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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