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로운 버무림

2010-11-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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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이게 어느 나라 음식인가. 동서양이 섞인 것 같군”“맛은 어떤가요?”“그런 대로 독특한 새 맛이 있어요” 음식점에서의 대화이다.“내가 미술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영 모르겠네. 섞인 자료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보기에 어떤가를 묻는 말에 그는 대답한다. “새롭고, 아름답군요” 음악은 어떤가. 국악. 클래식. 팝을 버무린 것 같은 음악에 관중이 열광한다. 그들은 그 음악이 어느 장르에 속하든 관계없이 감성을 건드리면 흥이 난다.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매사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경계를 구분하던 버릇을 내던졌다. 그리고 같은 부류거나 아주 다른 것들을 섞어서 새롭고 독특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시작하면서 재빠르게 달리고 있다.

왜 이런 새로운 물결이 퍼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생산업자가 말하였다. 물건을 만드는 것과 함께, 상품이 생산자. 상인. 소비자 사이에 거래되는 일 즉 유통이 중요하다고.현대는 사람과 물건이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를 좁히고, 육지. 바다. 하늘을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왕래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적인 국경은 있지만, 사람과 물건의 국경은 점점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그러면 이런 경향은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 정신은 한마디로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이란 깨달음에서 출발하였다고 본다. 모두 친구가 될 수 있고,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고, 서로 도울 수 있고,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각 민족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나 빛나는 개성은 뒤섞여서 특성을 잃게 되는가. 아니다. 한층 더 뚜렷해진다. 다른 사람들과 섞였을 때 내 자신을 분명하게 깨닫지 않는가. 결국 섞인다는 뜻은 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존재를 분명히 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한 민족의 예술이 다양한 문화 속에서 더욱 뚜렷한 현상처럼.세상의 흐름이나 유행에 관계없이 어느 한 쪽만 고집하는 것은 어떤가. 대체로 한국 것만 고집하는 어른, 미국 것만 고집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이 지역 생활이 불편할 것이다. 또한 이 사고 방식은 높은 울타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하나의 다른 것과, 가끔은 여럿의 다른 것과 섞이면
서 넘나드는 삶의 새로움은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겠다.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보고 있으면 매번 같은 자리에 앉거나, 어떤 한 친구하고만 놀거나, 같은 음식 먹기만 고집하거나, 똑같은 옷을 즐겨 입거나... 어떤 일이건 내가 전에 하던 대로 지키려는 학생이 있다. 한 쪽에는 같은 것을 되풀이하지 않고 새로운 것만 쫓는 학생도 있다. 후자는 요즈음 사회의 움직임을 보는 느낌과 같다. 이런 학생들은 마음을 활짝 열고 누구와도 사귀고, 무엇이나 경험하려고 하고, 때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낸다.

필자가 재직 중인 한국학교가 1975년에 발행한 문집에 “나는 커서 김치공장을 만들 거예요”라는 짧은 글과 함께 나란히 선 일꾼들이 김치 만드는 그림이 있다. 그 학생은 유감스럽게도 요절하였지만, 당시의 필자는 김치와 공장을 연결짓지 못하고 웃어넘겼으니 미안하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몇 나라에 있는 김치공장은 여섯 살 어린이의 발상이었다. 이렇게 새로움의 싹이 튼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나이에 관계없이 일상생활을 즐기고, 연구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싹트고, 자라나는 귀중한 보배이다. 여기에 ‘새로움 찾기’의 세계적인 풍조는 좋은 자극제가 된다.

가끔 태풍이 불어야 바닷물이 썩지 않고 재생된다니, 우리가 사는 지구도 새로움으로 탈바꿈하지 않고는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구와 우리의 건강과 번영을 위해 새로움에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새로움이란 서로 섞이며, 서로 나누는 데 싹이 튼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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