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 스트릿의 낙엽

2010-1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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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춘 기 <자유기고가/골동 복원가 )
1929년 주식시장의 붕괴는 미국경제가 꽤 오랫동안 중병을 앓고 있었다는 증표였다. 세계경제를 파멸시킬 시한폭탄의 초침이 한바퀴 돌고 마지막 초점을 찍은 것이다. 1년 사이에 은행 1,300개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3년, 전국에서 5,000개의 은행이 문을 걸어 잠금에 따라 일생동안 뼈빠지게 벌어 은행에 맡긴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은행들이 보유자산을 주식시장에 묶어두고 재미를 보다가 주식시장의 붕괴와 함께 날려버렸거나 실업자로부터 대부금을 회수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당시 월 스트릿 새벽길에는 밤새 휴지조각이 된 주식뭉치를 움켜쥐고 빌딩에서 투신한 시신을 볼 수 있었다. 이때의 상황을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월 스트릿의 낙엽들!” 당시 공화당 출신 대통령 후버는 골수 보수주의자로서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다. 국가공권력이 개입하는 어떠한 경제정책도 사회주의적 요법이라 하여 단호히 배제하였다. 그런 후버대통령이 새간을 놀라게 하는 한 서민정책을 내놓았다. 국제사과운송협회로 하여금 재고로 쌓여있는 사과를 실업자들에게 외상으로 나누워 주도록 했다. 그것으로 거리에 좌판을 벌려 빵값이라도 벌라는 것이었다. 뉴욕거리는 사과로 넘쳐 흘렀다. 뉴욕의 별칭이 ‘빅 애플’이다. 이때 이 별칭이생겼다는 일설도 있다.

1933년 3월4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첫 번째 대통령 취임연설 가운데 절망 속에서 허덕이던 미국시민에게 큰 깨우침과 희망을 안겨준 대목이 있다. “지금은 무엇보다 진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솔직하고 거리낌없이 말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먼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오직 두려움밖에 없다는 저의 확고한 신념부터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후회를 진
보로 바꾸는데 필요한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공포! 이름도 없고 이치에 닿지도 않고 정당화되지도 않는 그 공포 말입니다”민주당 출신 대통령 루즈벨트가 한 공권력을 동원하여 ‘뉴딜정책’을 밀고 나갈 때 배부른 공화당 중진들은 자유자본주의라는 미국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지 않는가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뉴딜정책은 사회주의정책이라 비난하면서 루즈벨트가 워싱턴을 모스크바로 끌고가고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진보에 대한 공포야말로 가장 저주스러운 공포라고 분노한 대통령 루즈벨트는 “자본주의 정책, 사회주의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이 공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이 어떤 정책이냐가 문제이다”라고 역설하였다. 여기에 응답이라도 하듯 작가 존 스타인백은 대공황의 위대한 서사시 소설 ‘분노의 포도’를 세상에 내놓았다. 스타인백은 구약성서 출애굽기에서 영감을 얻어 공황의 진실을 고발하는 이 책을 썼다 한다. 이데올로기의 도그마에 빠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보수 대 진보는 서로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을 통해 최대 공약수를 창출해 내는 동반자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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