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 문학을 하십니까?”

2010-11-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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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태(시인)
요사이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문학을 바라보거나 문학이란 얼굴을 마주대하며 살아 온 내 평생에 대하여 후회하는 마음이 부글부글 끓으며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아니, 눈물 고인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고 있다. 더듬어 생각을 해 보니, 분명한 것은 문학이 나를 좋아 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게도 내가 문학을 좋아해서 지금까지 왔다는 사실이다.

문학은 무심한데 천부적인 소질이나 타고난 문학적 기질도 없으면서 내가 문학에 미쳐서 문학을 내 인생에다 끌어들이려고 나 혼자 발버둥을 친 셈이다. 배우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무애 양주동 박사나 우현 김관식 선생, 또한 박인환 선생이나 이현우 선생을 비롯해 여러 선배문인들 주위를 맴돌며 배운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이었다. 배우면서 문학을 해보니 쓴 글을 정리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이 문학이라는 넓고 깊은 골을 점령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 늦은 석양녘에 와서야 깨닫는다. 문학이나 예술은 아름다움이 바탕이요, 사상이 뼈대다. 음계나 색깔이나 문법은 배워서 사용할 수 있지만 음악이나 미술, 그리고 문학은 배워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생 말년에 와서야 깨닫는다. 그러니 나오느니 한숨이고 보이느니 그림자도 없이 하늘로 사라지는 후회스런 보라색 저녁연기뿐이다. 다른 길을 갔더라면 지금쯤엔 실질적인 성공이란 단어가 덩그러니 매달려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타고나는 기질이 있고, 태어날 때 감추고 가지고 온 것이 있다. 참 예술인들은 소질이라던가 천부적인 기질이나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99%의 소질과 천재성에 1%의 노력이 진정한 문학인을 만든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니 분명히 나는 바보 중에 바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학이라던가 예술에는 진정한 예술적, 문학적 재질이라던가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몇몇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생산이 되면 그 것이 인류에게 족하다.문학은 사람의 얼굴을 근사하게 꾸며주는 화장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문학은 절대로 쉬운 학문이 아니고 문학의 글을 쓴다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잘못하다가는 문학 자체를 모독하거나, 문학을 한답시고 거들대다 소중한 인생 다 허비하고 무용지물도 아닌 쓰레기로 남게 된다.

과연 내가 문학인이 될 수 있으며 문학적 글쓰기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가? 한번쯤은 다시 점검을 하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다 늦은 지금에 와서야 내 앞에 왔다. 나뿐만이 아니다. 소위 문학을 합네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솔직하게 생각을 하고 문학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닌를 과감하게 용단을 내려야 할 일이다. 문학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걸 나는 몰랐다.기독교나 불교가 단 두 사람의 혜안과 노고로 이루어 놓은 인생을 위한 하늘의 종교라면 문학은 인간이 개척해 나가야 하는 삶의 종교와 같아서 아무나 손을 대서는 아니 될 영역임을 문학을 한답시고 은근히 거들대는 사람들은 깨달아야 한다. 문학은 취미의 도구가 아니다. 문학이 나와 같아 동행을 해 주거나 내가 문학과 같을 때 문학은 문학인과 동행을 해주면서 나와 인류에게 사상을 낳고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 미학을 생산하여 그나마 인류에게 조금은 위안을 떨구어 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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