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색유혹’에 빠져드는 한인들

2010-11-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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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주 영(주필)
한인 이 상(55세)씨는 지난 20년간 마약 밭에서 뒹굴면서 거의 폐인이나 다름없이 살던 사람이다. 그가 지금 세탁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며 새 삶을 살고 있다. 죽음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마약치료소에서 강한 의지와 인내로 참아낸 결과였다. 그의 삶을 가감없이 소개하는 것은 한인사회에 예상외로 마약중독자가 많은데다 이들이 모두 마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들 사이에도 마약이 날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어서다.

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에 따르면 마약의 오염은 지금 지역을 막론하고 한인청소년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중독 전문의 서창삼 박사는 현재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통상 한 커뮤니티당 인구수에 비해 10%정도로 계산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미국은 특히 마약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약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한인들이 집중 거주하는 플러싱만 보아도 차이나타운, 노던 블러버드에 가면 커넥션을 통해 얼
마든지 마약을 구입할 수 있고, 학교에도 마약장사들이 와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마약이 마리화나, 코케인이라고 하는데 가장 중독성이 심한 코케인은 지금 뉴욕 메트로폴리탄 일대에 전 미국의 50%정도가 퍼져있다고 한다. 롱아일랜드와 뉴저지는 코케인 중독자수가 현재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고 마리화나는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10여명씩 돈을 모아 구입해 복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충격적인 소리도 있다. 코케인은 많은 양을 복용하면 죽음의 경지까지 이를 수 있고, 미전역의 대학가에서 시험준비하며 흔히 복용한다는 애드럴의 경우 정신분열증까지 일으킬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대마초 정도는 흡연해도 딜러들만 잡아들이고 뉴욕도 마약을 한다 해서 처벌을 않다 보니 요즘 마약은 지역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퍼져나갈 수 있는 현실이다.

다시 말하면 한인 중독자들도 꽤 있을 것이라는 소문에 무게가 실린다. 한인들이 단지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요사이 마약세미나가 한인 교계를 중심으로 소리없이 전개되고 있는 이유다. 마약 전문기관에 의하면 마약은 일단 중독되기는 쉽지만 벗어나기는 매우 힘들다고 한다. 본인의 강한 의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약과의 단절은 타인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하다. 특히 같은 마약중독자들끼리 서로 돕고 서로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 분위기가 절대적이라고 한다. 마약의 중독에서 회복시키기 위한 NA(Narcotics Anonymous) 프로그램이 1953년 처음 미국에서 시작된 이래 NA는 현재 전 세계로 확산돼 약 120개 국가에서 2만개 이상의 집단이 등록되어 있으며 매주 수만개가 넘는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미주에서도 수많은 NA그룹이 각 카운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인타운 내에는 하나의 조직도 없는 상태다. 마약치료소도 곳곳에 많이 있지만 우리고유의 문화와 음식, 언어로 이루어진 한인전용 치료소는 없는 상황이다. NA프로그램은 마약중독자들이 모여 서로가 마약의 유혹에 빠져 지냈던 과거 생활, 망가진 몸과 마음 등을 서로 나누고 함께 마약의 무서운 손짓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교환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이를 물고 마약 끊기를 실천하는 프로그램이다. 마약에 대한 한인사회의 무관심과 무신경은 한인중독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 상 씨와 같이 중독자들이 마약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NA그룹이라든가, 한인 자체 마약치료소 설립 등에 뜻을 모아야 한다.

적지않은 한인들이 마약의 늪에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면 이대로 방관할 일일까. 한동안 논란이 일었던 마리화나 합법화가 지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부결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규정은 다시 통과돼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백색유혹’에 점점 물들어가고 있는 한인들, 이들을 절망과 고통의 늪에서 구해낼 한인사회 대책은 없는가 답답할 뿐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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