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사람은 모두 가수

2010-11-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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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병 임(논설위원)

지난 3월부터 시작하여 이번 달 23일까지 몇개월 동안 연일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한 ‘수퍼스타 K2’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는 작은 키에 평범한 외모, 중졸 학력, 환풍기 수리공 출신, 3살 때 헤어진 어머니 등 파란만장한 과거를 지닌 허각이다.준우승자인 존박은 올초 ‘아메리칸 아이돌 시리즈 9’에 출연하여 아시아인 최초로 탑 20위안에 들었던 시카고 출신 한국계 미국시민으로 잘생긴데다 노스웨스턴 대학교까지 다닌다.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탈락자에게는 잔인하지만 시청자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스릴과 재미를 안겨주니 오늘의 세태라 하겠다.

심사위원 점수와 대국민 문자투표로 심사가 공정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오로지 노래 하나로 인정받으려는 그들의 사연과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결국 만들어낸 화합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미주 지역을 비롯, 한국 내 지방 곳곳에서 열린 오디션마다 구름처럼 몰려든 참가자들을 보니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모두 스타가 되고 싶어 안달을 하나’ 싶을 정도이다. 우리 민족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이미 2,000여년 전부터 알려져 있다.
중국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살펴보면 ‘정월에 지내는 제천행사는 국중 대회로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영고라 하였다(부여조)’, ‘변한의 풍습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변한조) 등등, 곳곳에 가무를 즐기는 우리 민족이 나온다.


중국 길림성에 있는 고구려 고분 ‘무용총’은 14명이나 되는 남녀가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모습이 그려진 벽화로 옛 선인들은 죽어서도 노래와 춤을 즐기고자 했다.이 풍습이 근현대사를 거쳐 오늘날 가라오케와 노래방 문화로 이어졌다. 음치 클리닉이 있는 나라, 관광 버스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는데 목숨을 건 민족이 어디 또 있을까?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전 세계로 뻗어나가 사는 해외한인들도 당연히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친목회가 있는 날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미국이나 중국 촌락에
도 한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노래방’ 한글 간판이 없는 곳이 없다.왜 그렇게 한민족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할 까?

한민족에게 원래 고유한 신명이 있다고도 하고 민족 성격상 한이나 원을 스스로 풀어야 하기 때문에 노래방 문화가 발달한다고도 한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에서 보면 집안일이나 기타 이유로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주부가 노래방 독방에 들어가 악 쓰고 노래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노래하고 춤추면서 인상 쓰는 사람은 없다. 별로 친하지 않고 처음 본 사람이라도 같이 노래하고 춤추면서 함박웃음을 웃게 된다. 분노하고 섭섭하고 들뜬 마음이 노래를 하다보면 진정 되고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카타르시스 시켜 준다.
그런 것일 것이다. 뉴욕에 살든, 커네티컷에 살든, 동네 한인반상회, 학교 동창회, 각종 친목회에서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는 일은 더욱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행복해질 것이다. 노래는 알츠하이머에 걸릴 가능성도 낮아진다고 하지 않는가.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노래를 하는 한민족을 느끼면서 얼마 전에 KBS 1TV ‘전국 노래자랑’의 MC 코미디언 송해(83)씨가 한 말이 기억난다.“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가수입니다. 노래를 즐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전국노래자랑이 30주년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동포도 예외가 아닙니다. 개성공단 같은데서 노래자랑을 하면서 남과 북이 어울리면 그게 바로 통일이 아닐까 싶어요. 정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백성들이 다 같이 모여 노래하고 즐기면 그게 통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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