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경직 목사님과 제갈공명

2010-11-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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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다보면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놀라게 해서 도망가게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촉나라 재상이었던 제갈공명이 군사를 이끌고 결과적으로는 마지막이 된 제4차 위나라 정벌에 나서 오장원이라는 곳에서 사마중달과 대치하게 되었는데, 천기를 통달하던 제갈공명이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는 자신의 사후에 군대가 전멸할 것을 걱정하여, 부하 장수인 양의에게 자신과 똑같은 목각인형을 만들게 하고는 죽었습니다. 그 후 제갈공명의 죽음을 눈치 챈 사마중달이 쳐들어왔다가 목각인형 제갈공명을 보고 공명이 아직 살아있는 줄로 착각, 계략에 빠진 줄 알고 혼비백산해서 도망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지난 11월1일에서 4일까지 4일간 한국 서울 저동에 위치한 영락교회에서는 ‘화해’를 주제로 ‘한경직 목사님 소천 10주기 추모 제3회 국제 평화. 화해 컨퍼런스’가 개최되었습니다.

세계 58개국을 대표하는 107명의 신학자, 목회자들을 비롯한 약 200여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한경직 목사님의 삶과 신학을 통해 진정한 ‘화해’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우리에게 남은 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는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일생동안 전도와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구제에 이르기까지, 영혼육의 사역을 두루 다루셨으며, 특히 평생 겸손과 청빈을 바탕으로 ‘화해‘의 삶을 추구하심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50년 밥 피어스 목사님과 함께 월드비전 창설의 한 축이 되셨던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1986년까지 36년을 월드비전의 이사장님으로 한국 고아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되시기를 자처하셨던 분입니다. 영락교회에서의 목회가 목사님의 오른손 사역이었다면, 월드비전을 통한 모자원, 고아원 구제사역은 왼손 사역이었습니다.

1992년 한국 월드비전이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전환된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해 남한산성에 칩거하시던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이미 90세가 넘으시고 기력이 쇠약해지신 목사님이 “우리 민족이 도움을 받아 살던 민족에서 남을 돕는 민족이 되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네다, 살아 이런 기적을 보게 된 것은 진정 이 늙은 종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입네다”라며 눈물을 흘리시며 떨리는 손을 들고 간절히 축복기도 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10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변화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시각 또한 하늘을 찌를 듯이 거세지고 있음을 봅니다. 만일 자기 반성 없는 자기 합리화의 입장을 고수한다면 기독교가 지향하는 ‘화해’의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물론이거니와 비기독교인들조차 종교에 관계없이 존경했던 한경직 목사님…. 목사님의 소천 10주기를 맞아 죽은 제갈공명의 지혜가 살아 있는 사마중달을 혼비백산케 한 것처럼 소천하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생전에 삶으로 보여주셨던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가 대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일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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