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향집의 감나무

2010-11-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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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수필가)

수퍼마켓의 빨간 감이 내 눈길을 끈다. 고국을 방문했던 두해 전 가을, 고향집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향집은 없어지고, 잡풀이 자란 공터에는 한 그루 감나무가 버티고 서있었다. 전혀 그런 풍경을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황망했다. 가족들의 온기와 사랑, 추억들이 묻혀 있던 고향집이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니. 언니들과 가꾸던 화단, 지나가던 바람 소리에 잎을 부딪치며 휘익 소리를 내던 대나무 숲, 도랑 변에 서있던 무궁화나무 등도 흔적이 없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으나 서글픔은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런 나를 감지했던지 K가 감나무에서 불쑥 감을 따서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내 주먹보다 훨씬 큰 감을 엉겁결에 받아든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주머니에 손을 얼른 집어넣었다. 순간적인 행동이었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쩌자고 남의 감을 따서 내게 준담.’하는 심정이었으나 불식간에 공범이 되어 버렸는지라 허겁지겁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내 키보다 조금 더 자란 감나무인 걸 보면 주인에게는 그 감이 첫 수확인지도 몰랐다. 단 한 개 열린 감을 도둑맞은 줄 알게 되면 주인은 속이 많이 상할 것이었다. 그것도 전에 살던 사람이 가져갔다는 걸 알게 된다면 더욱 한심해지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했으나 그 걱정도 잠깐, 손안에 넘치는 감의 탐스런 감촉이 뿌듯하였다. 눈에 띠게 빨갛던 감이 내 외투 안에서 뭉그러져 버릴까봐 신경이 온통 거기에 집중되었다. 숙소인 언니 집에 오는 동안 그 감을 소중하게 모셔오느라 고향집에 대한 생각은 아예 잊어 버렸다. 마켓에서 사온 연시감을 보고 있노라면 잃어버린 고향집에 대한 슬픔 보다는 고향집 빈터에 주
인처럼 서있던 감나무와 K가 먼저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의 K는 길게 묵고 다니던 내 머리를 뒤에서 곧잘 잡아 다니며 “말 꼬랑지, 쇠 꼬랑지” 라고 놀려댔던 같은 마을 개구쟁이었다. 그런 K를 몹시 귀찮아했었는데 지금은 우직하고 인정 많은 어른이 되어 있다는 게 기꺼워 진다. 뉴욕으로 훌쩍 가버리면 그만일 나를 위해 고향집에 데려가 주었던 K도 내 고향집이 사라진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리라.

고국의 하늘과 뉴욕의 하늘은 멀고 먼 곳이나 잃어버린 고향집 대신 빨간 감과 인간미 넘치는 친구 K가 그곳에 있어 위로가 된다.떫은 감이 먹기 좋은 감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인간관계도 연륜의 숙성이 필요한 게 아닌
가 싶다. 서로 보지 않고 지낸 세월이 사십년이 넘었는데도 기억 속에서 곰삭아진 인연이 나쁘진 않았다. 이성 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로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 같이 갔던 동네 소꿉친구 성희에게도 K가 내게 따주었던 똑같은 감을 한 개 줄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얄궂게도 왜 그 감나무에는 감이 한 개 밖에 열려있지 않았을까. 큰 팽이 모양의 빨간 감을 볼 때 마다 고향집 터전에 자리 잡은 감나무가 보고 싶어진다. 얼마나 자랐을까, 올해는 감이 몇 개나 열렸을까? 그 감나무가 터주 대감이 되어 내 고향을 지켜
줄 것을 생각하니 든든하다. 내 고향집이 아직도 거기에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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