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은 내 사랑”

2010-11-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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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내 사랑”

한국 선교사 출신인 피도수 목사가 최근 108세 생일을 맞아 패사디나 자택에서 자녀들과 함께 모여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향수를 달래고 있다.

최근 108번째 생일을 맞이한 한국 선교사 출신 미국인 목회자의 극진한 ‘한국 사랑’이 감동을 낳고 있다.

주인공은 패사디나에 거주하는 벽안의 ‘피도수’(미국명 빅터 웰링턴 피터스) 목사. 그는 LA 트리니티감리교회의 파송을 받아 1928년 26세의 나이로 한국으로 간 뒤 한반도의 아름다움에 홀려 1941년 일제에 의해 추방 당하기까지 13년 동안 벽촌인 김화 지역(지금의 철원)에서 목회하면서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등 겉모습 빼고는 속속들이 한국인처럼 살아 왔다.

USC 졸업 후 명문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너는 선교사로 가야하는데 사역지는 한국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모친과 비슷한 시기에 듣고 한국에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즉각 순종했다. 그는 자신이 개척해 전통 기와집으로 예배당을 설계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중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의 한흥복 사모(1999년 작고)를 만나 한국 내에서 맺어진 최초의 한·미 커플이 되었다. 10세 연하였던 한 사모와 다복하게 살면서 그는 영은, 영혜, 영자, 영일 등 1남3녀를 두었다.


피도수 목사의 한국에 대한 애착은 여러 면에서 남달랐다. 벽돌집에서 살던 대다수 선교사들과는 달리 그는 미국식으로 생활하니 과연 자신이 미국에 사는 것인지 한국에 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결혼 전부터도 초가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밥, 김치, 된장국, 콩나물 등이 주식이었으며,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김치와 비빔밥이다. 뿐만 아니라, 1930년대 일본 순사들이 자기를 향해 “서양사람 서양사람” 할 때마다 “나는 미국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라고 대들며 언쟁을 벌이곤 했다.

300여점의 유화 작품을 남겼을 정도로 미술에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특히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한복을 입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 등 성경의 등장인물들을 모두 한국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성화들을 그렸다. 이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보다 20여년을 앞선 것으로, 한 마디로 그는 기독교의 한국 토착화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이다.

한국교회 초창기의 유명 부흥사였던 이용도 목사와 교분이 두터웠던 그는 이 목사가 성자와 같은 삶을 살았음을 선교부에 상세히 보고해 억울하게 이단으로 매도당했던 이 목사의 명예회복에도 일조했다.

피도수 목사는 얼마 전 자택에서 생일상을 받고 자녀, 가까운 친지들과 오순도순 옛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귀가 어둡고 걸음걸이가 불편한 것을 빼고는 건강상태가 양호한 그는 한 친지가 “아직도 한국생각이 나시냐”고 묻자 목멘 소리로 가슴에 각인된 향수를 토로했다.

“어떻게 그 땅을 잊습니까. 지금도 눈만 감으면 초가지붕에 빨간 고추가 널려 있는 80여년 전의 한국 풍경이 환하게 떠오릅니다. 정다운 한국 백성들도 마찬가지고요.”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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