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역의 습관

2010-11-02 (화)
크게 작게
김윤태(시인)

성인은 하늘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군자란 사람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 부끄러움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군자는 그늘지고 좁은 뒷골목을 눈치를 보아가며 다니지 말고 떳떳하게 대로를 걸어가라고 했다.나관중이 쓴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 중에 제 주인을 죽이고 투항해온 싸움 잘 하는 장군 위연을 제갈량이 보자마자 처형하라고 호통을 친다. 유비와 주위 고관대신들이 모두 놀라서 왜냐 하고 물었더니 주인을 배반한 놈은 앞으로도 또 주인을 배반 할 놈이라고 죽이라고 했다.

남편이라고 제 목숨보다 중하게 생각하면서 뒷바라지를 해 온 아내를 어느 날 바람이 난 남편이란 사람이 아내와 자식들을 다 동댕이치고 바람 난 여자와 새롭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위연이란 사람보다도 더한 배반이고, 정신이 똑바르면 대로를 가라는 군자의 도리를 팽개친 배반자이다. 이런 사람은 언제인가 또 배반을 낙으로 삼을 사람이다.지금은 별반 소식이 없지만 문학교실 출신인 수필가 한 분이 “저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배반을 할 겁니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문학도들을 아끼고 아끼면서 문학의 길을 닦아주려고 애를 써왔다. 또한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타고나기를 반골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 이용하고 싶을 때에는 오지 말래도 찾아와 갖은 아첨을 다 늘어놓는다. 누구나 그런 사람은 말로 늘어놓을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 잊고 싶을 뿐일 것이다.


정도를 가지 않거나 배반을 일삼는 사람들의 특징은 합리화시키기 위한 명분과 핑계를 찾는 데에 귀재들이다. 명분을 만들고자 하면 무슨 명분인들 만들지 못하겠느냐마는 정도(正道)를 가리면서 편법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그 명분은 떳떳한 명분이 되지 못한다. 반역이나 배반을 한 사람들은 잠시 흥에 겨워 그 배반을 잔치 상 위에 올려놓고 즐긴다. 그 즐거움이 과연 떳떳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 처자식을 배반한 사람이 새 여자와 만난 즐거움이 과연 진정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까? 이조시대에는 배반한 자를 능지처참으로 다스렸다. 그만큼 배반은 중죄에 해당이 된다.이민사회에서는 배반이 난무한다. 기회주의자가 많아 그때그때 손익계산서에 따라서 필요하면
아부하고 바라던 일이 끝나면 안면을 바꾼다. 종업원이 주인을 배반하고 옆자리에 동종의 가게를 차리고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는다. 돌연변이가 주연이 된 세상이니 인간은 슬프다.

올 가을은 유난히도 단풍이 고운 색으로 물들어 아름답다. 한 철을 왔다가는 한 가을의 단풍을 바라보면서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오히려 부끄럽다고 느낀다. 배반하는 자는 배반이 아니라고 말을 할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삶의 원칙이나 사회의 원칙을 거역하는 사람은 배반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없다. 그것이 배반을 일삼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성인이나 군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립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