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후대에 물려줄 유산은?

2010-10-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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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LA 4.29 흑인폭동 때 한인들은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피해자인 한인들을 도와주기 위해 나서는 정치인이 없었다. 오히려 폭동이후 가해자인 흑인들이 더 많은 피해보상을 받았다. 게다가 미디어들은 한인들이 흑인들을 인종차별 했다고 흑인들의 입장을 두둔했다. 그것은 바로 흑인들이 가진 정치력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한인들은 여전히 정치력, 정치력 신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무감각해 보인다. 우리가 늘 노래를 하고 있는 이 추상적인 단어 ‘정치력 신장’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한인커뮤니티 같은 소수민족 집단이 피해받는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집단적인 능력을 갖는 것이 어쩌면 소수민족 커뮤니티에서 정치인 몇몇 배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힘없는 약자의 입장에서 이 거대한 미국사회 속에서 이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커뮤니티에서는 한인유권자센터가 정치력신장을 외치며 유권자등록을 받겠다고 무던히도 애를 써 왔다. 그 결과 얻은 것은 유권자등록 용지 등이 마침내 한국말로 바뀐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정치력 신장이라면 신장이다. 또 유권자센터가 뉴저지에 ‘위안부 기림비’건설을 일구어낸 것도 우리가 힘을 모아 만든 일종의 정치력 신장의 결실이다. 이것은 모두 가만히 앉아서 된 일이 아니다. 모두가 해야겠다는 의지와 설득력을 가지고 만들어낸 작품이다.


한인들은 이제 미국에 살면서 이 나라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정치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우리 커뮤니티의 리더들이 미국정치 시스템에 대해 알려고 하거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없다. 한국정치는 알기 때문에 관심이 지나쳐 필요이상의 열을 올리고 미국정치는 모르다 보니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미국의 정치판도를 알고 끼어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기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엄청난 세금을 내면서도 그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타운에서 개최되는 예산관련 청문회 같은 곳에 참여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력은 내가 사는 타운이나 카운티에서 개최되는 지역사회 공청회나 주민회의에 참여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각 타운이 모여져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타운이 하나의 독립된 정부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인구 몇 만 명 되는 조그만 타운이라도 주민이 시장, 시의원을 뽑으면 이들이 경찰서장을 임명하고 타운의회에서 독립적인 조례를 만들어 법제화시키면 타운은 그 지역주민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즉 아무리 작은 타운이라도 자체적으로 공권력, 입법권, 조세권을 다 갖는 소위 국가의 작은 단위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관심을 안 갖는다면 결국 내가 사는 타운 정부가 부정부패, 독재로 이어지면서 적자에 허덕이거나 파산될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이 타운 내에서 온전하게 지켜지려면 지역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공청회 등에 무조건 참여하고 타운의 발전을 위해서도 주민발의안을 계속 내고 원하는 것에 대한 청원서를 받아 조례안을 제출해 통과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인 정치력 신장이다.우리가 어떻게 이민역사 불과 30년 만에 오늘날과 같은 기적의 커뮤니티를 이루었는가? 우리는 분명히 영어도 안 되고 문화나 제도도 모르는 이 땅에서 성공적인 이민신화를 가져왔다. 하면 된다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 무기였다. 잘 몰라도 해보려고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이루게 되는 표본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었다. 미국속의 정치력신장도 무슨 수가 나도 해야 된다는 의지만 있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오는 11월 2일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1세들이 후대에 물려줄 가장 중요한 유산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정치력 신장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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