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픈 사람

2010-10-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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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 (교도소 심리학자)

구약성서의 욥이라는 인물은 그의 아픔을 견딜 수 없어 “내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나의 어머니가 나를 잉태한 밤을 저주한다’라고 표현했다. 겉으로는 아픈 데가 없는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조용한 아픔을 지니고 산다고 왈도 에머슨은 말했다. 고통의 멍에니 괴로운 인생길이니 하는 노래가 있듯이 아픔과 고난과 고생이 찾아드는 인생길. 그것을 고해(苦海), 즉 괴로운 바다라고 말한다. 몸에 아픈 곳이 있는 사람이 약을 찾고 의사와 병원을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의학에서는 아픔을 통증이라고 하여 어떠한 병의 증세로 간주하고 그 아픔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병중에는 아픔을 느끼지 않고 일어나는 병도 있지만, 만일 사람에게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은 죽을병에 걸리고도 그런 줄 모르고 다닐 것이며,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의술의 표준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몸에 아픈 곳이 있는 사람이 의사에게 찾아가도 별 뚜렷한 진단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다. 아주 발달한 최신 검진기구로도 몸의 아픈 원인을 찾아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가 항상 아프다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남의 아픈 것을 대신 느낄 수는 없다. 언제나 나 혼자 만이 그것을 느끼기 때문에 아픔은 일종의 주관적이고 사적인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아프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아픈 행위를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간은 몸만 지니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지니고 사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아픔은 몸에만 해당되지 아니하고 마음에도 해당된다. 괴로움이니 고통, 고생하는 용어는 사실 마음의 아픔을 표시하는 용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잘 사는 사람들 틈에서 남만큼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의 아픔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의 아픈 행위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고 기를 쓰며 노력하는 그의 움직임에 나타나 있다. 이러한 사람의 아픈 행위는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있지만 자기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에게 원수를 갚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다. 서로 미워하는 관계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에게 피나는 아픔을 주는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자기가 가진 귀한 것을 잃었을 때, 가족의 급작스런 사망,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 것을 볼 때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느낀다. 남존여비의 관념이 짙은 상황 속에서 사는 여자의 아픔이 있고, 피부색깔의 차이로 인해 천대받는 자의 아픔이 있다. 고향과 나라를 박탈당해본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다이나마이트를 들고 들어가 그들의 집을 폭파시킨다. 그런 것을 보면 야훼가 그들을 선택했는지 그들이 야훼를 선택했는지 깊은 의심이 생긴다.

좋은 약과 용한 의사가 고쳐주지 못하는 아픔, 아픔을 주지 말고 덜어주며 살자는 교훈이 별 효력이 없는 세상, 하늘도 무심하고 하나님도 외면하는, 위로 받을 길 없이 그렇게 적막하고 아픈 사람들이 여기에 살고 있다.
물 속의 상어는 7분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질식해 죽는다고 한다. 아픈 사람은 아플수록 몸을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탄식의 자유를 높이 이행해야 할 것이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큰소리로 탄식의 소리를 내질러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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