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의 팡세

2010-10-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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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곁에서 좀 비켜나 있으면 사람이 훨씬 더 잘 보인다고 말한 분이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에서 떠나 있는 사람이 가장 사람을 바르게 볼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인간적인 온기가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말에는 싸늘한 관찰의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누군가 고독에 처해 있을 때 그는 주변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된다고 말한다면 훨씬 더 따뜻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파악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사람입니다. 가을에는 그 사실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처음에 그는 하나의 몸짓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를 그립다고 말했을 때, 그는 이미 내 안에서 따뜻한 사랑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의 인식은 존재의 어머니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변경에 두 번 도달했습니다. 첫 번째는 40일만에 시내 반도를 가로질러 왔을 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과 보호 속에서 그리던 이상향을 향해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둘러본 가나안은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실망 속에서 가나안을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규정하고 절규했습니다. 환상은 언제나 실체를 평가절하 시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크게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로 데리고 가서 40년을 헤매고 다니게 합니다. 그들이 환상을 버리는 세월이었습니다. 가나안 변경에 두 번째 이르렀을 때, 그들은 비로소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나안을 획득하기 위해 싸워 나갔습니다. 동일한 땅이 어떤 과정, 어떤 생각으로 도달했느냐에 따라 ‘거민을 삼키는 땅’이 되기도 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40년의 고통스런 떠돌이 삶을 통해서, 그들은 그 땅이 가진 현재적 사실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젖과 꿀이 흐르게 해야 하는 땅이라는 의미적인 진실을 비로소 중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허락은 성취되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고, 인류에게 구원이 시작되는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고 진정한 인간의 가치가 선언되는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을 환상적인 어떤 곳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출애굽의 역사가 보여줍니다. 하늘나라는 단순히 아름답고 안락한 장소가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먼저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이고, 다음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신뢰하고 사랑하고 반기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사람이 평가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이 존중되는 곳입니다. 진정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곳, 거기가 천국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구촌 곳곳서 동료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과 질병과 가난을 나의 고통으로 함께 느낄 수 있을 때, 우리가 도달할 가나안, 그 천국이 제대로 우리 속에서 시작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인간가족으로서 그 모든 불행과 싸워서 함께 이겨나가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로 와서 천국이 되었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되는 이형기 씨의 시는 봄철의 낙화를 대상으로 한 시이지만 그 시의 끝은 가을에 닿아 있습니다.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결별이 이룩한 축복에 쌓여 내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에서 ‘헤어지자…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이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맑은 눈’까지 이형기 씨의 시에는 자기를 버림으로 마침내 자기를 얻어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가을이 있습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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