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성(性) 평등지수

2010-10-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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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들은 지 아주 오래 되었지만 그대로 신선한 이야기가 있다. 한국 문인들 여럿이 유럽에서 열린 세계 펜클럽 모임에 참가한 후 귀국 길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동경에서 택시에 당연한 듯이 먼저 오르던 여성을 밀치며 “여기는 동양입니다”라고 외친 남성 문인이 있어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고 한다. 유럽 여행 중 익숙지 않은 ‘레디 퍼스트’의 신사도를 지키느라 고생했을 한국 남성, 그 동안 여성 우선이 습관화되어 우쭐했을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중국에서는 자녀를 하나만 갖자는 운동이 일자 여아의 수효가 줄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은 유교적 관념에서 ‘칠거지악’이라는 것에 좌우된 시절이 길게 어어 졌다. 여기에 포함된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 즉 시집에서 쫓겨날 때의 ‘자식 없음’은 남아를 가리킨다. 이런 사회 풍조는, 산모가 오랜 산고 끝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뭐냐고 묻고는 딸이라고 대답하자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날 거야”하고 외쳤다나. 이제는 다 옛이야기가 되었다. 낳기 전에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아니까. 신비성을 깨뜨린 이야기다.


세계 여러 나라의 성(性) 평등지수가 발표되었다. 한국은 전보다 좀 좋아진 편이지만 135나라 중에서 100위를 벗어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이 현상을 이렁저렁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상이다. 모두 조용하다. 그러려니, 그럴 수밖에, 좋아지고 있으니까 다행이다...등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 방면에서는 북유럽인들이 앞섰고, 아시아인이 유럽보다 훨씬 못 미친다. 역사적인 바탕 때문인가.특히 놀라운 것은 우리들 자신이 남녀 평등을 저해하면서 전연 느끼지 못하는 사실이다. ‘남자답지 않다’ ‘여자답지 않다’는 말도 때로는 제각기 다른 경우에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

흔히 상대편의 언어나 행동에 제동을 걸 때 사용됨을 말한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여자답다’ ‘남자답다’는 개념의 차이가 커서 보편화하기 어렵겠고, 이는 남녀 차별의 원점이다.‘남자가 먼저 선택하고, 다음은 여자 차례‘ ‘남자는 장래 이 집을 이어갈 사람이고, 여자는 시집갈 것이고’ ‘오빠를 먼저 대학에 보내자. 네 학비를 마련할 동안’ ‘남자에게 덤비다니 어디 여자가...’ 가정에서 생각 없이 사용하는 이런 말들은 남녀 평등이라고 볼 수 있을까.‘남학생은 태권도반으로 가고, 여학생은 무용교실로 가자’ ‘남학생 뒤에 여학생이 설 것’ ‘남학생이 먼저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나면, 여학생이 나와서 그림 이야기를 하자’ ‘남학생은 여기 앉고 여학생은 저기 앉아’ 이렇게 저렇게 남녀를 갈라놓을 필요가 있을까.

남. 여는 서로 대항할 상대가 아니다. 남녀는 서로 경쟁할 대상도 아니다. 남녀는 제각기 가지고 있는 특성을 살리면서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남녀를 특별히 갈라놓아야 할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모두 이리 와서 앉으세요” “태권도를 배우고 싶으면 체육실로 가고, 한국무용을 배울 학생은 무용실로 가세요” “키가 작으면 앞에 앉고, 키가 크면 뒤에 앉으세요” “힘이 센 학생은 책상을 운반하세요” “힘이 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도우세요” “다른 사람을 친절히 대하세요” 구태여 남. 여 구별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인간 대접을 하는 것이다.

요즘 ‘국격’ 나라의 품위에 대한 의견이 풍성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것 같아 유감이다. 이번 칠레 광부 구조에서 보인 질서 있는 작업과정, 구조 현장, 광부들의 낙천적이고 평상적인 언어 동작, 가족과의 절제된 만남 광경 등을 보면서 국격이 높은 나라임이 부러웠다. 국격은 표면에 보이지 않다가 큰 일이 생기면 수면 위로 나오는 것 같다. 국격은 일상생활에서 길러지는 것이고, 정신적, 물질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높아진다. 국민
의 애국심, 공중도덕 이행, 남녀 평등지수, 교육 정도 등을 바탕으로 경제 생활이 향상될 때 균형 잡힌 국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남녀 평등지수에 결코 무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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