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감나무

2010-10-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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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큰딸아이가 아내가 원한다는 생일선물이라면서 마켓에서 100달러를 주고 조그만 감나무 한 그루를 사왔기에 집앞 정원에 심었었다. 그땐 생일선물로 하필 감나무를 원할까 의아해 했었는데... 옛날 나의 처가의 뒤뜰 장독대 옆에는 수 십 년 된 감나무가 있어 해년마다 가지가 찢어질듯 감들이 열었었고 가을이면 나무위에서 노르스름하게 물들어 아름답고 풍요로운 느낌을 주었단다.

60을 넘겨버린 아내가 머리는 파뿌리처럼 희어가지고는 잠시 잠시 그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향수에 젖는 것을 본다. 고국을 떠난 지 올해로 40년이 넘는다. 요새처럼 여유있게 향수에 젖어볼 기회도 없이 내 곁에서 바쁘게 직장인으로, 세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친구로... 이민생활의 부담을 묵묵히 이겨냈다. 저 감나무를 볼때마다 미소를 머금는 아내를 보니 감나무를 생일 선물로 준 내 딸아이가 고맙기 그지없다.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정성과 배려가 필요하듯 이 나무 또한 그랬다. 지난 몇 년간 버팀목부터 만들 고 양쪽에 끈으로 고정을 시켜주고 비가 오지 않으면 날마다 물을 주고 거름도 시시때때로 주고 너무 바람이 불면 돌봐주고... 오던 첫해에는 잎사귀만 무성할 뿐이었고 두 번째 해에는 감꽃 몇개를 피우고는 그 감꽂이 감이 된다 싶더니만 바로 다 떨어져 버렸다. 너무 여린 나무여서 힘이 부쳤는가 보다 하면서 계속 돌보아 주었더니 금년엔 연약한 가지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가을볕에 익어가고 있다.


집이 코너에 위치하여 오가는 사람들이 우리 어린 감나무를 보고 신기해한다. 무슨 나무예요? 열매는 먹을 수 있나요? 몇년이나 키운 거예요? 아이들도 물어보고 어른들도 물어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은 먹어는 보았어도 나무는 보지 못하였던 것 같다. 감이 익어가는 모습속으로 나를 포함하여 내 딸들, 아내 그리고 동네 사람들까지 내 고국을 회상하고 잠시나마 여유의 시간을 갖게 한다. 여러 사람이 좋으니 나 또한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유기택(브루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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