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의 숨겨진 원인들

2010-10-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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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뉴 라이트 상담센터 카운셀러)

최근에 필자가 일하는 카운셀링 센터에 40대 여성 박애나(가명)씨가 오셨다. 애나씨는 다양한 종류의 통증에 시달린지 1년가량 되셨으며, 식욕과 성욕이 감퇴되었고, 온 몸이 피곤하고 기운이 없다고 하셨다. 건강 검진을 받은 결과 다행히도 신체에는 이상이 없지만 신경성으로 통증이나 각종 증상이 온 듯 하다고, 또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말씀하셨다. 정신과 의사나 소셜워커 등을 만나보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으시고도 심리치료나 정신과 치료에
대한 왠지 모를 수치심과 불안감으로 한참을 망설이신 애나씨는 결국 여동생의 성화와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카운셀러를 찾았다.

필자를 처음으로 만나던 날, 애나씨는 자녀들도 영재 학교에 입학하여 잘 다니고 있으며, 남편과의 사이도 무난하고, 무엇보다도 전문직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연봉을 상당히 많이 받으신다고 강조하셨다. 애나씨는 삶이 스트레스가 많고 힘들어도 전반적으로는 행복하고 보람있는 삶이라고 하셨다. 애나씨는 그냥 카운셀링에 한 두번만 오시고 장기적으로 오실 생각은 없다고 하셨다.
삶이 이렇게 보람이 있는데 왜 건강에 이상이 오고 의사나 여동생이 심리치료를 강하게 권유하셨을 지에 대해 필자가 여쭤보았다. 애나씨는 한참을 조용히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시다가 아마도 간혹 가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것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게 이유가 아닐까라고 말씀하셨다.


젊었을 때에는 감정을 잘 억누르고 표현을 안하더라도 폭발하는 일이 없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며 폭발하는 일이 많다고 하셨다.상담을 진행한 결과, 애나씨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하시기보다는 무조건 억누르는 성향이 있는 것이 드러났다. 애나씨는 성인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면 안되며, 사람들 앞에서 슬픔이나 화를 드러내거나 우는 일은 남에게 지는 일이라 가정교육을 단단히 받으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애나씨는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인식(label)하는 능력이 부족하셨다. 감정을 오래 오래 억누르며 일생을 살아오셨으니 당연히 감정이 억제가 더 이상 안 되어 폭발을 하시는 것이었다. 덩달아 건강도 안 좋아지고 우울감이나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생활이 지속
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상담을 하며 한국 이민자중에 애나씨와 같은 분들을 종종 만난다. 한국의 문화는 성인들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감정 표현을 자제해야 하고 또 최대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도록 권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이 풍부한 존재라 감정이 북받칠 때는 적당하게 표현을 해줘야 하기 마련이다. 장기간 참고 참으면 애나씨처럼 결국엔 감정이 더 이상 통제와 억압이 안되고 폭발하듯 밖으로 분출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 한인들도 너무 감정을 억누르고 너무 자제하지 말자. 감정의 표현이 너무 지나쳐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적당한 감정의 표현은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아주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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