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금을 좇던 사나이

2010-10-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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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신대륙인 아메리카를 개척한 유럽인은 두 줄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1607년 플리머스에 상륙한 영국 청교도들이고, 다른 줄기는 1620년 버지니아 비치에 들어온 스페인인들이다. 플리머스에 들어온 사람들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이민의 목적으로 하였고, 버지니아에 터를 잡은 개척자들은 주로 노예 매매를 위한 비즈니스 개척자들이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찾는 이주민들은 전 세계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는데 신앙의 자유 같은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민은 거의 없고 대개가 보다 여유 있는 경제생활이라는 버지니아계의 이민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1492년 10월 12일이었다. 그 후 그는 네 번이나 신천지 탐색 항해를 하여 바하마 열도, 베네수엘라, 쿠바, 푸에트로리코, 등을 발견하였다. 그가 스페인 왕 페르도난드와 왕비 이사벨라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신천지를 발견한 것은 나의 수학의 힘이나 항해술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신앙고백은 콜럼버스가 4차 항해를 마친 뒤에 쓴 것이며 1차와 2차 항해까지만 해도 그는 인도라는 나라에 노다지 금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황금을 찾아 나셨던 사나이였다.


2차 항해 후 그의 정신생활에 일대 변화가 온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 얼마동안 은둔 생활을 하며 물질만을 탐하던 자기의 인생을 깊이 뉘우쳤다. 특히 구약성서 이사야서 11장 11절의 말씀을 읽고 자기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거기에 ‘남은 자들’ 곧 잔류자(殘溜者)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현재의 역사는 죄로 얼룩지고 혼란스럽지만 하나님은 새 시대를 열 ‘그루터기(Remnants)’를 보존하고 있다는 사상이다. 실상 이 ‘그루터기 신앙’은 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사상이다. 모든 예언자들이 자기를 하나님이 새 시대 준비를 위하여 남겨놓으신 그루터기로 자부하였던 것이다.

이런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환난과 반대 속에서도 서쪽으로의 항해를 결행할 수 있었다. 콜럼버스의 선원들은 10월 11일에도 폭동에 가까운 데모를 벌이고 배를 돌리지 않으면 콜럼버스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이튿날인 10월 12일 새벽이 밝았을 때 안개 속에 육지가 드러났다. 지금의 바하마 열도이다. 꿈을 가진 자는 참을 수 있고 꿈이 없는 자는 조급하고 신경질을 부린다. 신념이 있는 자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세이며 신념이 희미한 자는 조용히 기다리는 슬기도 전진하는 에너지도 없다.아무리 가난한 농부도 종자만은 남겨둔다. 그 속에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구차한 현실 속에서
도 꿈이라고 불리는 종자는 보존해야 한다. 종자를 먹는 것은 미래를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란 그것이 고상하고 남을 위하는 것일수록 행복의 동력이 된다. 가난한 사람이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이다.

기왕 꿈을 품으려면 큰 꿈을 품어라. 작은 꿈은 피를 끓게 하지 못한다. 기왕 뛰려면 실력보다 더 높은 데에 목표를 두라. 인간의 지혜는 두 마디면 족하다. 꿈과 실천이다. 이 둘을 다 가져야 온전한 지혜가 된다. 꿈은 소년에게는 시를 쓰게 하고, 장년에게는 에너지를 공급하며, 노인에게는 젊음을 제공한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자이다. 꿈은 소생의 힘이다. 꿈은 불행한 자에게는 새 출발의 의욕을 일으키고, 슬픔에 잠긴 자에게는 희망찬 내일을 속삭인다. 그러기에 꿈을 가지면 두 번째 인생을 살 수 있다. 흔히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의 표라고 한다. 나는 그 네 잎을 이렇게 이름 짓는다. 한 잎은 사랑, 또 한 잎은 믿음, 셋째 잎은 감사, 넷째 잎은 꿈이다. 꿈을 품은 자의 특색은 기쁨이다. 소망을 말하면서도 찌푸린 낯으로 하루를 지낸다
면 그것은 꿈꾸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 어둠이 햇살을 막지 못하듯 어떤 절망도 꿈꾸는 자의 전진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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