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멘’과 ‘박수’ 유감

2010-10-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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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 (목사)

‘아멘’이란 기도나 찬송 뒤에 붙여 ‘그 내용에 찬성합니다’는 뜻이고, ‘박수’란 음악을 듣고 손바닥을 치며 칭찬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보면 이들은 서로 비슷한 점들이 있다. 박수와 아멘은 참여의식과 더불어 공감의 확인도 내포되어 있다. 박수 없는 음악회나 아멘 인색한 교회에 앉아있으니 차라리 오아시스 없는 빈들에 앉아 있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아멘과 박수를 함에는 감격과 기쁨 그리고 이해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군중심리에 의한다든지 또는, 동문서답 식으로 한다면 이 또한 공해가 아닐까.

로마의 네로황제는 자신이 노래 부르는 광장에 ‘박수부대’를 배치시켰다는 설이 있고, 서울의 어느 대형교회에서도 소위 ‘아멘부대’라는 것을 만들어 설교 중간중간 우렁찬 아멘의 효과음을 내어 설교분위기와 설교자의 인기를 고조시킨다는 유쾌하지 못한 소문도 들었다. 즉, 센스있는 박수와 아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센스’란 뜻은 사물의 미묘한 점에 대한 느낌이요 그 뜻을 깨닫고 이해하는 힘이다. 반대로 ‘넌 센스’란 이해없이 또 분별력도
없이 치는 박수소리, 감동이나 신앙도 없이 발설하는 아멘소리를 말한다.


20여년 전, 필자가 서울에 살 때 생겼던 ‘넌 센스 박수’하나를 조심스레 소개할까 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 개관 기념으로 그 유명한 일본의 NHK방송교향악단을 초청해 챠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연주했다. 근래 보기 드문 명연주였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곡의 마지막 악장에는 자칫하면 연주가 끝난 것같이 오인할 수 있는 부분이 몇번 나오는데, 그 조용하고 긴장된 부분에서 누군가가 박수라도 쳐버린다면 어떡하나하며 걱정하고 있던 찰나, 아니나 다를까.

반갑쟎은 박수가 터져나오고야 말았다. 그뿐만 아니라 기립박수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이것이 해프닝이라 하는가. 아니면 황당한 사건이라 해야 옳은가. 어쨌든 나는 그저 곤혹스러워 하는 그 노 지휘자의 표정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또 그 지휘자가 과연 한국 클래식 음악 관중들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하는 것은, 곧 그의 난처해하는 표정 속에서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몇 달 전인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후, 뉴욕타임스가 한국관객들의 과잉박수 반응에 대해, 민감하게 지적한 기사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음악과 복음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노력은 전혀 없이 마치 감기 바이러스가 유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감염되는 것처럼 음악이나 복음을 아무 자기노력 없이도 감염(?)되어 보겠다는 식의 생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인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베토벤 바이러스’란 말도 따져보면 실제로 맞지 않다. 음악회 티켓을 아무리 비싸게 주고 샀더라도 또한 아무리 많은 액수의 헌금을 냈더라도, 다 복음을 이해하고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것을 사랑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만이 그 큰 기쁨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마치,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는 말씀과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하는 말씀이 여기에 해당되는 적절한 말이 된다.
이번 가을 예술의 도시 뉴욕에는 여기저기에서 연주회가 열릴 것이고, 또 며칠 후에는 카네기홀에 우리 자랑스런 KBS교향악단이 온다고 하는데, 뉴욕 필하모닉 보다 더 좋은 연주를 해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동시에 한국 고전음악 관객들의 성숙한 박수소리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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