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33인, 그들을 내버려두라

2010-10-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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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세상이 온통 칠레 광부의 무사귀환을 축하하고 있다. 13일 오후 9시55분께를 마지막으로 700여 미터 지하에서 69일만에 지상에 복귀한 광부 33인의 생환 드라마는 발견부터 구조까지 동영상과 유튜브를 통해 낱낱이 지구인에게 전달되었다.지난 8월 5일 칠레 산호세 광산 갱도 중간부분이 붕괴되면서 지하에 묻히고 만 광부 33명, 그들은 절망과 죽음에의 공포를 희망과 인간승리로 바꾸었다.외부에 생존 메시지가 전해지기 전 17일 동안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주아의 지시 아래 48시간마다 스푼 2개 분량 참치, 쿠키 반조각, 우유 반컵으로 버티고 있었다.굴착작업이 시작되면서 19~63세의 광부들은 광섬유 전선을 내려 받아 지상과 교류했지만 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갱도에 대한 공포를 떨치고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전직 카메라맨은 피신처 생활을 카메라로 찍어 지상에 알렸고 전 프로축수선수는 축구 경기 동영상을 해설하여 동료들에게 시간을 잊게 했다. 또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광부는 오락반장을 맡아 불안과 우울증을 날리는데 일조했다.

굴착이 진행되는 50여일동안 그들은 “가족들을 위해 싸워나가고 싶다”고 마음을 다졌다 했다. 죽음을 앞두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가족이기 마련, 이들 중에는 결혼 25년만에 다시 청혼한 광부도 있다.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산 것이 가장 후회가 되었다는 것. 죽기 직전 ‘내 재산 누가 어떻게 나눠 가져’가 아니라 생전에 못했던,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다들 “여보, 내딸아 사랑해, 정말 사랑해”인 것이다.이제 앞으로 그들에게 쏟아질 언론의 과열취재 경쟁과 뒤따르는 물질적 보상은 엄청날 것이다. 이미 그들은 8월말에 회사측에 1,2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칠레 현지 사업가는 개인당 돈을 1만달러씩 준다고 했다.


그리스 광산회사는 1주일간 지중해 관광비용을, 칠레 축구협회는 한국여행을, 영국의 축구영웅은 그들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으로 초대했다. 이외 방송 인터뷰에, 영화제작에 명예와 돈이 쏟아져 들어올 전망이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그들의 의지, 생명에 대한 남다른 각오가 넘치는 물질에 세뇌당하지 않기 바란다. 어떤 역경, 절망적 상황에도 꿋꿋하게, 의연하게 대처했던 자세가 허망한 유명세에 무너지지 않게 ‘그들을 내버려 두라’고 소리치고 싶다. 한국에선 이미 이런 경험이 있었다. 1960년대, 가정과 산업현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던 석탄을 캐던 광산이 여기 저기 많았고 그만큼 광산 사고도 잦았다. 매몰사고로 세계 기록을 세웠던 ‘양창선 사건’을 기억하는 한인들이 많을 것이다.

1967년 8월 22일 충남 청양 구봉광산의 양창선 광부가 갱구가 무너지며 125미터 지하에 갇혔다가 16일 만에 구조되었었다. 다행히 묻힌 자리에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어 온국민은 물론 세계적 관심 속에 양창선의 구조작업을 지켜보았다.그리고 그 생존 스토리는 영화<생명>으로, 윤대성의 희곡 <출세기>로 재탄생되어 다시 국민의 화제를 모았었다. 그 윤대성의 희곡 <출세기> 전반부는 매몰광부 김창호(연극 이름)가 구출되기까지, 후반부는 국민스타 김창호가 매니저를 두고 연예활동을 하는 장면이다. CF 모델도 하고 오락프로에도 나
가고 돈과 유명세에 허우적대던 그는 대중의 관심이 식어지며 가족도 잃고 결국 차비도 없이 거리를 헤매게 된다. 광부 전원 무사 구출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해외여행 초청, 선물 쇄도 기사를 보면서 연극 <출세기>의 씁쓸하고도 허망하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칠레 광부들이 땅속에서 나와 제일먼저 가족을 찾고 껴안는 장면을 보면서 그들이 앞으로도 감동의 인생을 살기 바란다. 매몰사고가 나기 전보다 보람 있게, 뜻있는 일을 하면서 새로 찾은 인생을 음미하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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