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연서: 세종대왕께

2010-10-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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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일본 아니면 중국?” “한국에서 왔어요” “아아, 그러면 어떤 말을 사용해요?” “한국말이요” 물은 사람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장면이 하도 빈번하니까 웃으며 대답하는데 익숙해졌다. 세계에는 작은 그룹에서 사용하는 말까지 넣어 6천여 가지 다른 말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들을 기록하는 방법이 없어서 사용자들이 세상을 뜨면 말들도 함께 소멸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한글이 있다. 한글은 올해 564돌을 맞이한다. 그것도 임금이 백성들이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창제한 글인 점이 자랑스럽다. 우리의 역사에는 말과 글에 대한 혹독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 한글이 생기기 전후의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말을 중국 한자로 기록하던 사람들과, 36년 동안 일본말과 글을 사용하던 사람들이다. 필자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성장기에 학교에서 한글을 배운 기억이 전연 없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강습회를 쫓아다니며 한국말을 닦고 한글을 배웠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한글이 마땅히 국보 제1호가 되어야 한다.


‘한글’이란 뜻을 음미해본다. 첫째, 큰 글. 둘째, 훌륭한 글. 셋째, 하나 밖에 없는 글. 넷째, 한국 고유의 글이라는 뜻이니 ‘한글’의 이름 자체가 그 훌륭함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한글의 특징은 한자의 뜻글자와 달리, 영자처럼 소리글자임이 특징이다.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24개의 ‘한글’자모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거의 없음은 놀랄만한 일이다. ‘한글’은 선견지명의 슬기로움을 가진 글자이다. 창제된 지 500여년 후에 컴퓨터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하였다. 컴퓨터의 자판을 치면서 “한글아, 너 영리하다”고 칭찬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요즈음 ‘한글’을 수출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만 있고 표기할 글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지역에서 ‘한글’을 사용케 하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전한다.

말하자면 ‘한글’은 친구를 널따랗게 사귈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한글의 너그러움이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왜 한글이 이 지역에서 성장하는 자녀들에게는 아직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본다. 일상 생활에서 별로 쓸모가 없다. 상급학교 진학에 큰 영향이 없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한국말이나 한글을 배워도 사용할 장소나 친구
가 적다...등등 말이 많다. 이런 생각들은 한국어나 한글 학습이 선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이 기본이고 필수라면 어떤 변명도 설자리가 없지 않겠는가.‘필수’라고 생각한다면 자연히 생활태도가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왜 영어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나? 왜 이 지역에서는 한국어와 한글학습에 그와 같은 열의를 보이지 않을까. 한국어와 한글학습이 기본이고 필수라고 생각하자. 사람은 정신.기능.체력으로 삶을 영위한다.

그 중에서 정신은 기초이며 만사의 뿌리이다. 한국적인 역사 깊은 뿌리는 미국적인 기능을 배우는 좋은 바탕이 되어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굳건한 토대가 된다. 이 지역의 부모나 선배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이 기초 작업이다. 요즈음 ‘한글’의 세계화 물결이 보이자 미국에서도 한국어와 한글 능력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청년들이 한국어 교실에 모이고 있다. 좋은 경향이다.

금년도 한글날을 맞이하며 세종대왕께 감사드리는 마음 간절하다. 세종문화를 개척하셔서 민족의 정신과 삶의 토대를 쌓아 올리시고 풍요롭게 하신 업적, 그 분의 창조정신과 선견지명의 능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런 마음은 그 분을 향해 이 뜨거운 사랑의 편지를 올리게 한다. 그 분이 주실 회답은 가까운 장래 이 지역의 우리 자녀들이 대신 보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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