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패(勝敗)의 논리

2010-10-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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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 (언론인)

사람은 참 요상한 동물이다. 여가를 즐기자고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놀이를 보면 대부분 경쟁으로 판가름을 하고, 승패에 따라 이기면 좋아하고 지면 언짢아한다. 모든 운동경기가 그렇고 장기·바둑·마작·포커·화투·윷놀이 등 갖가지 놀이방식이 그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골프는 여느 경기와 달리 상대방에게 공격을 가해서 점수를 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치는 대로 점수가 나옴으로 승패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이 운동만큼 그 날의 컨디션과 점수에 관해 설왕설래가 많은 운동도 없을 것이다. 자기와의 싸움이라지만 결국은 스코어로 기분이 좌우되는 것은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다.

가끔 바둑 두는 데 가보면 유난스레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자기가 지면 상대를 놔주지 않는다. 화가 나서 볼멘소리로 긁어 대거나 신경질적 반응으로 분위기를 흐려놓기 일쑤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놀이를 매체로 하는 동호인끼리의 모임은 친목을 다지고 기쁨을 나누자는 만남인데, 승패에 따라 그토록 변덕을 부리고 기분을 잡칠 바에야 뭣 하러 그 곳에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귀한 시간과 돈, 노력과 정성을 쏟으며 말이다.
사실 우리네 삶을 들여다 보면 살아가는 나날이 싸움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크고 작은 많은 일상사가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고 결과는 뜻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경제적 이해관계나 승진·보직 같은 신분상 영향을 미치는 일에는 반응의 강도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영광과 좌절, 행복과 불행이 그걸로 결판나는 양 안달하며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먹고 먹히는 정글의 포식동물이 아닐지라도, 인간 사회조직의 근원에는 경쟁을 빼놓을 수 없고, 경쟁이 있는 곳에 승패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그래서 R·버튼 같은 사람은 ‘경쟁은 인생의 법칙’이라고 까지 하지 않았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경쟁의 원리를 살려 성공했고 공산주의의 통제경제는 이를 거부하다 망했다. 공정한 선의의 경쟁이 악덕일 수 없음이 증명된 셈이다. 문제는 그 방법과 결과를 인정하는 자세다. 스포츠에서는 룰을 지키는 페어플레이로 결과에 승복하고, 오락잡기에서는 지더라도 느긋하게 그 과정을 즐기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대범과 여유는 스트레스를 퇴치하고 만족과 감사를 느끼게 하는 고급스러운 정서이기에. 세상은 기는 자 위에 뛰는 자가 있고,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차선차후(差先差後)-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는 것. 이것이 속세의 사정임을 수긍하는 것이 패자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또 오늘의 승자는 내일에 패자가 될 수 있음을 각오하고 겸손해야 한다.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승부극단주의로 치닫는 경쟁은 서로가 고달프고,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이기 마련이다.

상대를 배려하며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윈 윈(Win Win)-상호간에 승승게임을 터득하는 것이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명함이다. 이는 나의 일부를 내어 주는 도량이 수반 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범인의 일상과는 달리 군인들이 명심할 게 있다. 전쟁의 세계에서는 이기느냐, 지느냐 두 갈래 길밖에 없다는 것을… 전쟁에 지면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쟁과 오락이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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