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사찰음식과 웰빙(Well Being)

2010-09-30 (목)
크게 작게
박원영(경제팀 차장대우)

말라리아로 한해 수만명이 목숨을 잃는 아프리카의 빈국 우간다, 그 중에서도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습지가 많아 유난히 어린이들이 많이 사망하는 한 마을 이야기다. 이 마을이 구호기관의 도움을 받아 방역활동을 벌여 다행히 어린이 사망률이 크게 줄었다.

그런데 몇 년 뒤 다시 사망률이 급증했다. 원인은 습지에 살충제를 뿌리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금지 이유는 미국의 의류기업이 습지 주위에 재배한 목화에 있었다. 이 목화는 ‘오개닉 속옷’의 원료가 되기 때문에 살충제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 것이다. 입에 들어가는 것 뿐 아니라 몸에 걸치는 것까지 오개닉을 찾는 ‘환경 친화적인’ 소비자들은 뽀송뽀송한 속옷을 입으며 ‘웰빙’ 생활을 누리겠지만, 자신이 입을 옷을 만들기 위해 많은 어린이들이 숨져간 사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조계종이 주최한 ‘전통사찰 음식의 날’ 행사에서 기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찰음식의 가장 큰 의미가 “내가 먹는음식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는 섭식행위라는 설명이었다. 신도가 아닌 기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찰음식이란 개념을 그저 ‘몸에 좋고 신선한 채식’정도로만 인식했었다. 사찰음식=채식<웰빙 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그리고 100명은 되어보이는 비구니들이 공양을 받는 영상을 시청할 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스님들은 주어진 모든 밥과 반찬을 남김없이 먹고 빈 밥그릇에 차를 부어 마셨다. 그 많은 스님들이 식사를 마쳤을 때 단 한톨의 밥 알갱이도 헛되이 버려지지 않았다.
뉴욕의 식당에서 한사람만 밥을 먹고 나도 얼마나 많은 음식이 쓰레기그릇에 담겨지는가? (우스갯소리로 절에서 가장 편한 일이 설거지라고 한다) 단지 음식이 아까워서 때문만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먹는 음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고했고,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에너지가 소비됐는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웰빙이란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웰빙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우리가 수도자가 아닌 이상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남과 환경을 떠올릴 수는 없다. (그럼 밥맛 다 달아날 것이다) 하지만 분명 채식이 육식보다 지구환경을 위해 바람직하더라도, 내가 먹고 소비할 것들 그리고 버릴 것들 때문에 어떤 희생들이 따르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면 너무 ‘웰빙(Well Being)’을 강조하는 것도 좀 우스울 것이다.

게걸스럽게 패스트푸드나 삽결살 먹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유난스럽게 내 몸만 챙기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맨하탄에서 같이 식사한 적이 있는 깨작깨작 먹다가 음식을 반은 남겨버린 미국인 채식주의자 같은 사람이라면.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