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가을에는 행복해 지고 싶다

2010-09-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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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수확의 계절,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 왔다. 이 가을에 행복해 지고 싶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몇 날 며칠 실컷 울고 싶다. 과연 누가 막강한 힘으로 세계에 군림했던 미국의 위신을, 경제를 땅에 떨어뜨렸으며, 이 사회를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고국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에게 도덕 불감증을 그토록 심각하게 심어놓았단 말인가. 탈세, 위장전입,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도 부족하여 고위공직자 자녀 특별 채용에 이르기 까지. 실컷 울고 나면 카타르시스로 인하여 마음이 후련해지고 비장미를 맛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은 지난 학창시절에, 직장 생활 가운데, 일찍 지아비를 여의고, 고독과 독백 속에 푹 빠졌을 때가 있었다. ‘혼돈된 질서 속에서 최상의 지혜를 짜내어 질서를 회복하고 자기 나름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결론을 내리면 된다’면서 걸핏하면 고독과 독백에 빠져 그 속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치기어린 그 고독과 독백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에 걸맞게 좀 더 성숙된 고독과 독백을 즐겨야 하겠다. 우리가 당면한 이 역경을 어떻게 잘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


전화위복의 긍정적 태도를 가지고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역경을 승리로 이끌어 행복해질 것인가를 열심히 사색해 보자. 유명한 시인 렌터 윌슨 스미스가 쓴 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깊이 음미해 본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우리에게 불어닥친 쓰나미 같은 역경. 이것 또한 지나갈 테니까.가을은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천고마비의 계절’, ‘결실의 계절’, ‘사색의 계절’ 등등. 그러나 나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독서가 나의 영혼과 정서를 살찌워 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도서는 옛날부터 내려오며 인류의 가장 우수한 지성인, 예언자들의 두뇌의 총화를 축적한 저장고’라고 배웠다. 그 도서가, 그 도서를 읽는 독서가 지금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화 시대, I.T.시대에 사는 우리가 컴퓨터를 클릭. 클릭만 하면 원하는 정보가 눈앞에 펼치지는 상황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한없이 진부하기만 한 책을 멀리하고 아예 읽기를 꺼려하고 있으니,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나는 남아수독 오거서(男兒須讀 五車書 남아로 태어나서 반드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니, 일일 불독서 구중 형극(一日不讀書 口中刑棘 하루 책을 읽지 않으면 저절로 입에 가시가 돋힌다)이란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가을에 우리 친지들이 애써 출간한 수필집, 소설, 각종 문예지, 그리고 베스트 셀러들의 책 속에 묻혀 독서하는 즐거움에 푹 빠지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얻는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그리고 가을이 점점 깊어져 한 잎 두 잎 낙엽이 땅에 떨어져 쌓이고, 우리 발에 밟힐 때 나는 낙엽처럼 겸손해 지리라. 프린스턴 대학 심리학 교수 카네만은 ‘항상 겸손하고 남에게 감사할
줄 아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행복’이라 하였고 서강대학 장영희 교수는 ‘행복은 산꼭대기에 있지 않고 산꼭대기까지 오르는 과정에 있다’고 말 했듯이 겸허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노라면 이 가을이 행복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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