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세계 속의 우리 문화

2010-09-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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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19세기 초 유럽제국은 서구 문화의 뿌리를 찾아 비유럽 지역을 샅샅이 뒤져 고대 유적지를 발굴하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비유럽 지역에서의 문화재 획득은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만큼 문화재 쟁탈전은 총칼에 의한 전쟁만큼이나 치열한 제국주의 경쟁이었다. 전시에서의 문화재 약탈은 인류역사가 생존하는 한,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로 인해 전시나 강대국의 침략에 의해 빼앗긴 문화재를 찾기 위한 노력은 국가별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베이징 침공으로 강탈당한 문화재 대부분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를 상대로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다.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을 내걸고 정부차원에서, 혹은 민간단체, 일반인들이 경매낙찰 등을 통해 필사적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는 역으로 독일 나치군에 의해 탈취당한 자국의 모네, 고갱, 세잔느 등 세계적인 작품 등을 독일 정부와의 끈질긴 협상 끝에 되돌려 받았다. 한국의 경우 특히 일제 강점기 때 엄청난 문화재가 약탈당하거나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7만여점이 넘는다고 한다. 이 문화유산을 찾기 위해 한국에서도 줄기차게 문화재를 탈취해간 일본을 상대로 반환요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문화에 대한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문화재를 약탈당하거나 빼앗긴 국가들이 기회만 되면 자국의 문화재를 되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문화 유물이 그 나라의 자존심과 국가민족에 얽힌 혼과 정신이 담겨있는 귀한 보물이자 유산이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문화재를 온 국민이 소중하게 생각해서 잘 보존하고 후세에 곱게 물려주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은 예전부터 문화재는커녕, ‘문화’에 대한 개념이나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조차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도 정부나 국민들 사이에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이나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문화예술인도 많이 늘어나 세계 각지에서 문화예술의 꽃을 활짝 피우고 문화예술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나 위상을 드높이는 한국인 문화예술인들이 꽤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 문화라는 개념에 대해
잘 모르고 문화예술인에 대해서도 관심조차 없는 한인들이 여전히 눈에 띤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와 문화인을 소홀히 하고 외면 한다면 누가 우리의 문화를 가치있게 볼 것인가, 또 누가 우리를 고귀한 문화유산을 가진 자랑스러운 후예라고 하겠는가.

문화는 반드시 우리의 얼을 확인할 수 있고, 살아 숨쉬어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문화, 그런 문화의 생활방식을 끊임없이 창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뜻있는 사람들이 각계에서 활동하는 문화인들이 우리의 얼을 빛내고 우리의 얼이 녹아 있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잘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뉴욕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문화를 통해 자기 커뮤니티를 알리기 위해 인종별로 매년 퍼레이드를 펼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문화를 통해 위상을 높
이고 인종간의 간극을 좁히고 서로 다른 삶의 색깔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공유하면서 각기 다른 인종이 하나가 되기 위해 하는 노력이다. 무엇보다도 코리안 퍼레이드는 미국속의 한인커뮤니티와 우리민족이 지닌 자존심의 상징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문화가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라 하였다. 수많은 인종들이 모여 사는 이 땅에서 한인들이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잘 발전시키고 지키지 않으면 열등 민족으로 뒤떨어지게 되어 있다. 김 구 선생은 백범일지의 마지막에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문화민족이라고 하였다. 인종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각축전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우리 문화를 확실히 지키면서 문화에 대한 자존심과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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