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관계를 회복하자

2010-09-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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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홍 (뉴욕신광교회 목사)

고국에서 중추절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즐기고 돌아오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 나니 고향이 새삼 그리워진다. 지금은 다 고인이 되었지만 부모님에 대한 애절함이 눈시울을 적신다. 그런데 평소에는 우리가 부모나 형제에 대한 관심이 얼마였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인간관계의 회복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따스한 정이 오가는 사회가 세워질 때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 너무 차갑고 냉소적인 사회에서 우리 자녀들이 자라다 보면 더 험한 사회를 만들 것이 뻔하다.

너무 무관심한 이웃이 되어 서로에게 도움이 아니라 짐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옛날에는 우리들은 친구 간에 입 속에 있는 사탕도 쪼개서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요사이는 점점 적막하고 인정이 끊어지는 상태를 본다.
어느 노파가 죽으면서 집에 있는 애완동물에게 유산을 남겼다고 한다. 집에서 정들어 길렀던 개나, 고양이들을 최선을 다해 보살피다 저들도 다 죽으면 남은 돈은 자선기관에 넘겨주라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이 며느리와 함께 소송을 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님이 정신이 없어 잘못 유언을 했을 것이니 그 유산은 당연히 아들의 것이란다. 이때 재미있는 재판 결과가 명 판사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판사가 아들에게 물었다. “어머님의 생신이 언제인지 아는가?” 아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어머님이 좋아하신 음식은 무엇인가?” 이 역시 아들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판사는 정색을 하면서“아들로서 어머님께 일 년에 몇 번이나 전화를 드렸는가?” 이때도 아들의 입에서는 말이 없었다. 판사는 경고조로 “아들인 당신은 집에서 기르는 개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는가?” 재판의 결과는 유언대로였다. 내 자신은 과연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아들과 얼마나 다른지 자신있게 대답을 할 수가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우리도 유구무언의 상태라면 중추절이라 일시적 기분에 부모를 생각하는 척하는 더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도 “있을 때 잘해” 라고 한다. 내 자신은 막둥이로 자라서인지 부모님께 한 번도 무엇인가를 해 드리지 못한 것 같다. 이제는 해드릴 것 같은데 부모님은 계시지 않으니 마음이 더욱 아프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각별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자. 또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자. 좋은 사회나 국가 건설은 결국 사람관계에 있다. 지나친 이기주의가 서로에게 짐만 되는 사회가 되면 미래는 없다. 부모를 바르게 공경하는 사람은 어른에게도 이웃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소통이 잘된 사회일수록 신의가 두터워지고 살기 좋고 살맛나는 사회를 이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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