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추석은 지났지만…

2010-0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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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불경기와 토네이토 속에서도 뉴욕에 한국 고유의 명절 추석이 왔다 갔다.
한인마트는 햇곡식과 과일을 진열하고 제수용품을 판매하는 등 추석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한인은행과 한인업체 직장에서는 송편을 고객과 직원들에게 돌려가며 추석음식을 즐겼다. 지난 16일 최악의 토네이토가 한인 밀집지역인 플러싱과 베이사이드 지역을 강타하며 참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뉴욕시 일원에 1,000여 그루의 가로수가 뽑혀 나가고 자동차가 쓰러진 나무에 깔려 파손되고 전신주가 반 토막 나며 4만 5,000여 가구가 정전이 되었다.

석달 전까지 그 일대에 살던 나는 5년이상 출퇴근길은 물론 주말내내 프랜시스 루이스 블러바드와 유토피아 파크웨이 도로를 오고가며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그 길을 애용했었다.18일 오후 그 도로가 궁금하여 가보니 가로수가 아스팔트를 들고 일어나 뿌리채 뽑혀나가고 지붕이 날아가고 담이 무너진 집에 미처 치우지 못한 넘어진 가로수에 인해 한쪽 길은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었다. 노란 띠가 둘러진 여러 갈래 금이 간 나무는 언제 쓰러질 지 보기에도 조
마조마했다.


추석 연휴 첫날인 21일 오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 기습 폭우가 내려 물난리가 났다. 9월에 내린, 102년 만에 가장 큰 비는 빗물 배수처리 시설의 용량 부족으로 그 난리가 난 것이라는데 광화문역 근처 인도에 무릎까지 찬 물 속을 걸어가는 시민 모습이 심란했다. 추수 차례상에 올릴 전을 부치다가 집안으로 물이 들어와 차례상도 못차린 사람, 물에 잠긴 방바닥이 들고 일어나 잠잘 데가 없는 사람, 복구시킬 일도 문제지만 당장 먹고 입을 것과 잠자
리가 걱정이라고 했다. 하수구에서 펑펑 올라오는 누런 물과 물이 가득 찬 집안에서 가장 놓은 의자 위에 올라 앉아있는 사람 사진을 보면서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아마 196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어른은 없고 아이들만 집에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마당 가득 물이 고이며 그 물이 부엌으로 흘러들어와 부엌이 한강이 되었다. 당연히 부엌 연탄아궁이의 불도 꺼져버려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일 때문에 시내에 나간 엄마는 폭우 속에 언제 올 지 알 수 없고 어린아이 넷이 고픈 배를 움켜잡고 찬 방에서 잠이 들었다.
“밥 먹고 자, 밥 먹고 자”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엄마가 돌아와 아궁이의 물을 다 퍼내고 밥을 새로 지은 다음 아이들을 깨우고 있었다. 그때 엄마에게서 풍겨오던 피곤에 전 땀 냄새가 얼마나 단지, 그리고 아이들의 손에 수저를 지어주며 짓는 엄마의 미소가 얼마나 포근한 지 참으로 신기
루 같았던 기억이다.

폭우 속에 버스가 안다녀 집에 오기가 힘들었다며 집에 오자마자 부엌에 고인 물을 양재기로 다 퍼내고 불을 지펴 밥부터 지은다음 밤늦은 시간에 아이들에게 먹으라면서 활짝 웃던 엄마, 당신은 그날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래도 춥고 배고프고 서러웠을 아이들을 먼저 안심시키던 엄마, 추석 물난리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 때 장면이 눈에 선하다.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천연재해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언제 어디서라도 우리를 강타하고 있다.

뉴욕에서는 20일부터 가로수 수거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퀸즈 공원국에서도 피해현장 복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파손된 자동차가 풀커버가 아니라면 보험 보상이 안될 것이고 집마당의 나무로 인한 피해는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파손된 이웃의 지붕과 담, 길 앞 도로를 삽과 빗자루를 들고 나서서 함께 치워 주고 돕는 길을 찾아보자.또한 토네이토 뒷수습을 하느라 끼니도 잊는 그들에게 추석은 지났지만 송편을 배달하여 그들이 재난 당한 설움을 다소라도 잊어버리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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