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수적 신앙, 진보적 행동

2010-09-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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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지인과의 대화에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깊은 골을 알 기회가 있었습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접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씁쓸하게 대화를 끝내면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한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적대적 공존관계’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를 수구 꼴통과 좌익 빨갱이로 바라보는 현실 속에서 한국 사회 및 교회가 보수와 진보를 넘어 함께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고민해 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습니다. 물론 신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복음주의와 자유주의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입장이 현재 한반도가 안고 있는 남북대치 국면과 맞물려 극단적으로 ‘좌파’와 ‘우파’로 불리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보수진영은 개인 구원에 중점을 두고 전도와 제자훈련, 부흥회 등의 교회 내의 사역에 집중한 반면 진보진영은 사회 구원에 중점을 두고 민주화 운동과 사회 참여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그런데 보수는 성경이라는 규범을 지키려는 열심이 때로는 이론과 교리에 치우쳐서 유연하지 못하고 답답한 결과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지키기 위한 열정은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삶에 있어서 개교회 중심적 경향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사회의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돌아보는 복음의 본질을 망각한 채 교회 안의 믿는 자들만을 위한 이기적 공동체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진보는 생활과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원칙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무오성 및 예수만이 구원의 길임을 고백하는 복음주의 교회로부터 말씀과 하나님 명령에서 떠난 인본주의라는 비판을 듣게 되었고 근본주의 교단으로부터는 이단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한국 교회사를 보면 보수와 진보의 협력 성공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1992년에 남서울교회에서 발기하여 1994년부터 활동이 시작된 남북 나눔 운동입니다. 1960년대에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가 비로소 선지자적 사명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기독교계는 1969년 3선 개헌을 놓고 진보와 보수로 분열됩니다. 그 때부터 진보진영은 인권이나 민주화 문제에 깊이 관여했으며, 보수진영은 교회 성장과 선교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1990년대 초 정치 환경이 바뀌면서 진보진영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정권과의 싸움에 지원군이 필요했고 보수진영은 북한 선교와 북한 돕기를 위한 경험과 통로가 절실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필요에 따라 양측이 서로 연합하여 남북 나눔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보수진영의 신앙과 열정이 진보진영의 지성과 냉정함을 만난 아름다운 역사적 선례입니다.

남북 나눔 운동은 오늘날 기윤실이 추구하는 교회 개혁과 윤리실천 운동의 나아갈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신앙에 있어서는 보수를, 운동에 있어서는 진보를 추구할 때에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32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내용은 보수를, 방법은 진보를 취하는 기윤실 운동이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된 한국사회를 치유하는 또 하나의 노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박혜성 담임목사 / 남가주 휄로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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