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흥부 놀부의 후일담

2010-09-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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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중에 우리의 고전 ‘흥부 놀부전’의 후일담을 들어 보신 일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없으시겠지요. 후일담이란 없으니까요.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동생 흥부가 착한 심성으로 치료해 준 강남 제비 덕에 벼락부자가 된 반면에 천하에 심술쟁이 놀부가 동생 흥부의 치부를 시기심으로 흉내 내다가 졸지에 패가망신한 이야기, 그 종결부 이후부터 시작해 보십시다.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생존의 위기에 몰린 놀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동생 흥부를 찾아갑니다. 과거의 흥부처럼 주걱으로 뺨 맞아가며 양식을 좀 달라고 애소했을까요? 아닙니다. 놀부는 흥부와는 다른 스타일의 인간이니까요. 심술과 자존심으로 뭉쳐진 그는 얻으러 가는 주제에도 동생집 대문을 발로 걷어차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양식 정도가 아니라 재산을 모두 내놓으라고 으르렁댑니다. 순순히 내어주지 않는다면 어떤 보복이 따를지 모른다고 위협합니다. 끝내는 흥부네 저택 안으로 돌멩이를 날리고 대문에 불을 질러 소방대를 출동하게 하는가 하면 조카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등 별별 야료를 다 부립니다.

그런 놀부를 두고 흥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흥부 부인이 밥주걱으로 놀부의 뺨을 때려 내좇을까요? 아닙니다. 그건 착한 흥부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흥부는 그 때마다 형님을 집안으로 모셔 들이고 산해진미를 차려 배부르게 대접하고 적지 않은 돈을 들려서 돌아가게 합니다. 흥부로서는 형님의 몰락이 가슴 아프고 안쓰러워서 형님 가족과 합가하여 한 집에 같이 살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오만방자한 놀부는 “네 집 행랑살이나 하라는 것이냐”고 호통을 치면서 “아예 네가 가솔을 데리고 나가라. 내 가족이 들어와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흥부를 위협해서 뜯어간 돈으로 기생집에서 가무음주로 세월을 보내는가 하면 조폭들과 사귀어 흥부의 재산을 통째로 접수할 망상에 젖어 지냅니다. 이래서 흥부놀부전의 후일담은 그 본편을 뺨치는 긴장과 폭력과 술수가 이어지는 스토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후일담이 이쯤 오면 흥부놀부의 이야기가 단순한 전래소설이 아니라 현대 우리민족의 형편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남한 국민들이 착한 마음으로 밤낮으로 뛰어 강남제비의 기적을 이루어내는 동안 북한 정권은 심술과 해코지로 세월을 보내다가 졸지에 공산세계의 몰락으로 가산이 탕진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북한의 도발과 납치, 위협 등은 남한의 발전과 안전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합니다. 필요 이상의 군사비용과 외교노력, 그치지 않는 긴장에 시달려야 합니다. 그동안 남한이 북한 지원에 쏟아 부은 자금이 적지 않은데도 북한의 폭력성은 더 큰 조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놀부는 지금까지 사귀어 온 조직폭력배에 멱살이 잡혀 그에게 아부하고 충성함으로써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니 굶주리는 자기 가족들에게는 무리한 인내를 강요하고, 형제 흥부에게는 해묵은 공갈을 반복합니다. 자연 흥부의 고민은 깊어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흥부에게 난국을 타개할 선한 지혜가 요청됨을 알게 됩니다. 폭력적 공갈에 대처하면서, 신음하는 놀부네 가족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태생적인 해코지 근성의 놀부가 전근대적 망상에서 깨어나기를 촉구하는, 그래서 형제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이 네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해법이 우리 남한의 흥부에게 절실한 과제로 주어져 있습니다.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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