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이브리드 언어

2010-09-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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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본래 기계는 사람 대신 일하는 일꾼이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함께 살다보니까 어느 틈에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기계는 똑똑하고 다재다능하다. 어쩌다가 기계 사용법에 어긋나면 곧 지적하고 바로잡는다.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성능을 갖춰 대견스럽다. 이러한 기계의 발달은 몇 가지 재주를 겸하는 것이 한 가지 재주에 능한 것보다 부실할 것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기계 말고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하이브리드 버스가 시내 공기 정화에 이바지한다고 밝은 얼굴로 지나간다. 이 버스는 두 가지 밥을 먹고 달리니까 개스가 필요하면 주유소에 가고, 전기가 필요하면 충전소에 가면 된다. 자동차의 밥은 개스고, 사람의 밥은 쌀로 짓는다. 그래서 한국의 경제 지수는 쌀값이, 차가 많은 미국의 경제 지수는 개스값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하이브리드 버스나 차가 먹는 밥이 한 가지 더 첨가되어 성능이 더 좋아졌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요즈음이 하이브리드 디지털카메라 전성시대라고 한다.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몇 가지 성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카메라가 있다고. 대학생들도 두 가지 전공을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 요즈음이다. 사회생활이 복잡해질 수록 혼성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본다. 이런 경향은 이 사회가 각종 기능이 있어야 살기 편하다는 것을 알린다. 하이브리드 언어는 어떨까. 혼성노래처럼 말소리를 섞거나, 이야기 속에 다른 말을 뒤섞어 말한다는 뜻이 아니다. 필요에 따라서 다른 종류의 말로 의사교환을 한다는 뜻이다. 종래 이중언어라는 말을 흔히 썼지만, 요즈음은 그것을 넘어서 다중언어라는 말을 한다. 사회모습이 급격히 바뀌면서 그에 따라 언어 생활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 때 같은 뜻을 가진 말이지만 효과를 올리기 위해 첨단의 말로 바꿔보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언어라고.

한국학교 학생들의 변하지 않는 질문은 ‘왜 한국어나 한국문화를 배워야 하느냐, 또 언제까지 이 학교에 나와야 하는가’이다. 학습의 동기와 일차적인 목표에 대한 것이어서 당연하다. 교육에서 동기 유발은 목적 달성의 열쇠이다. 대답은 여기서 태어났어도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아 발견과 삶에 긍지를 가지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 첫 번 답이다. ‘언제까지’다녀야 하느냐의 답은 대학에서 중급 한국어를 택할 수 있는 실력이 길러질 때까지라고 말한다.

한국학교 교사들이 성의껏 가르치지만 주어진 여건 때문에 그 효과가 확연치 않아 좌절되는 경우가 흔하다.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가르칠 것이 많고, 한국 관계 교육이라면 가정에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학교 교육에 대한 기대가 시들하다. 학생들은 이 판에 다른 것을 배우겠다고 소리를 높인다. 다시 9월이 시작되었다. 각급 학교가 새롭게 교육계획을 짜고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갖췄다. 한국학교도 여러 모로 불리한 환경을 이기고, 즐거운 학습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양팔을 활짝 펴 달려오는 학생맞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이 필요한 이유와 일차적인 교육 목표를 다시 한 번 알릴 것이며 하이브리드 언어 사용자가 되자고 외치겠다.
이래서 9월은 즐거운 달이다.

이번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경우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하이브리드 언어의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할 것이다. 이 학생들이 한국사람들과는 한국말을 하고, 영어권 사람들과는 영어로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에는 한글로 메시지를 보내고, 여기 친구들에게는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는 데 불편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하이브리드 언어의 챔피언에 틀림없다. 이러한 기초는 이중을 넘어 대중언어로 가는 계단에 올라서게 할 것이다. 우리 2세들에게 대한 꿈은 9월 하늘에 높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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