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화주의 용광로

2010-09-1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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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 (의사)

많은 미국인들이 노동절 공휴일 주말 어디로 휴가를 다녀왔지만 내가 사는 이웃의 옆집, 앞집도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마침 지난 일요일, 인도 계 파리드 자카리아가 진행하는 CNN GPS 국제문제 토론 프로그램에 중국 부동산의 큰손인 장신(Zhang Xin)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슈퍼마켓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시장바구니를 든 평범한 동양여성인 아줌마 얼굴이다. 그러나 그녀는 중국 상업용 부동산회사 소호(SOHO)의 최고경영
자로 인파이낸셜타임즈 선정 ‘세계 50대 여성 CEO’ 명단에도 오른 여성이다.
진행자는 세계질서를 지배했던 초강대국인 미국이 흔들리는 제국으로 그린 ‘미국 이후의 세계’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며 주류신문의 편집장이다.

그는 왜 수많은 중국유학생들이 미국에서 다양한 분야의 석사학위를 딴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가 하고 그녀에게 묻는다. 그녀는 아메리카 드림은 이미 퇴색해가고 있기 때문에 창의적인 경영인재들이 미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중국 토종 인터넷 검색업체의 최고 경영자인 리엔홍은 북경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와서 컴퓨터 공학석사 학위를 받고 1999년, 실리콘밸리의 꿈을 접은 채 본국으로 돌아와 백도 라는 이름의 검색엔진을 설립했고 검색시장에서 구글을 압도하며 질주하고 있다. 백도는 중
국문화의 분수령이었던 송나라 시에 나오는 이름으로 그는 중화주의 부활의 신화를 만들었다.


장신도 같은 세대로 북경에서 태어나 소호(SOHO)라는 회사를 남편과 공동으로 설립하기까지 그녀는 이혼한 홀어머니와 힘겹게 살아온 억새풀 같은 여자다.
중국 만리장성 바로 옆에 ‘코뮌 바이 더 그레이트 월(commune by the great wall)은 그녀의 기발한 착상과 자본으로 지은 친환경적인 휴식공간으로 세계적인 최고급의 호텔이다.그녀는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탱크 앞에 맨몸으로 정부군에게 저항하며 민주개혁을 외치는 시위 학생들의 세대였다. 중국이 빗장을 열어 개방하기까지 격동의 소용돌이를 거친 그녀의 세대는 이제 40대에 접어들어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의 중화주의를 부활시키는 주역으로 변신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키워드는 중국의 부활로 세계 60억 인구를 중화주의 용광로에 녹이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거대한 두루마리 화면에 함께 죽간을 든 3,000명의 공자제자들이 입장하는 장면을 펼치면서 중국은 유교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는 지구화(globalization)의 주역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 내가 북경에 들렸을 때 천안문 광장은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그때 나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은 동아시아 변동의 휘몰아치는 삭풍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격렬하게 부딪치는 각축장의 무대로 다시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다.값싼 노동력으로 돌아가던 중국의 세계공장은 금융중심지로 다시 발돋움하여 세계 심장부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도박장도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카오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뉴욕 상하이 지역에서는 새로운 높은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가고 있어 동아시아의 맨하탄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중국은 중원을 중심으로 중국변방을 둘러싸고 있는 55개 소수민족과 지구촌을 중화주의 용광로 속에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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