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간 큰 사람들

2010-09-10 (금)
크게 작게
호기선(전 하버그룹 수석부사장)

데이빗 패터슨 뉴욕 주지사는 그 얼마 안되는 야구경기장 입장권 몇장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있다. 작년 월드시리어스 경기입장권 다섯 장을 구단에 요청한 뒤, 돈도 안주고 표를 받았다는 것이다. 주지사니까 의당 공짜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 이것이 나중에 직권남용으로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일이 터지자 다급해진 나머지 날짜를 소급한 수표를 슬쩍 내놓았다는 구차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비록 몇천 달러도 안되는 이 사건으로 직권을 남용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고, 과연 벌금을 근 10만달러를 내게 될지는 몰라도 법을 위반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 벌금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 놓은 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준법정신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요즈음 한국에서 터져나오는 뉴스들이 결코 즐거운 일들만은 아니어서, 2년 전에 지나갔던 일들이 다시 떠오르게 된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청와대인사들과 고위공직자들을 기용할 때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는 신종용어까지 나돌도록 만든 내정자들의 투명성, 도덕성, 윤리성을 따졌던 인사청문 소동
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지난 경험을 통해서 이제는 청와대의 모든 잣대가 올바로 세워졌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 너무 큰 바람이었었나? 이번 8.8개각에 총리를 비롯해서 몇몇 고위공직자들에게서 또다시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투기 등등의 의혹들이 쏟아지고 있어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안된 이야기같지만 이런 일들이 아프간의 카르자이정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한국이 세계경제 15위의 나라이고,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이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뛰어난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오늘,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이 정도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중에 특히 위장전입 문제는 기네스북에라도 도전해볼 만도 했다. 어떻게 많게는 다섯 번씩이나 위장전입한 인물을 버젓하게 후보자로 지명하게 된 것인지 의아
스럽다(하기야 다섯번 한 사람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만). 이제는 좀 번듯하게 자신있는 인사추천을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검증을 할줄 몰라서인지, 검증규정에 위장전입 같은 것은 아예 문제도 안된다는 것인지, 전입한 인사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어서인지, 아니면 알고는 있지만 눈 딱감고 잠간만 청문회에서 참고 견디면 다 없는 일로 될 것이니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더 기막힌 것은, 교육을 위한 전입이니 나쁘지않다는 변명이나 국민들이 이해해주면 된다는 뻔뻔한 기대는 분명히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고, 위장전입은 엄연한 실정법 위반행위라는 것을 잊어버린 무분별한 사고다. 이에 비하면 2천달러 좀 넘는 야구장 입장권 때문에 수모를 겪고 있는 데이빗 패터슨 뉴욕 주지사 사건은 어린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진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