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코란 소각과 분서갱유

2010-09-10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플로리다의 ‘도브 월드 아웃리치 센터’의 테리 존스 목사가 오는 11일 ‘9.11테러’ 9주년을 맞아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태우겠다고 하여 그 파문이 커져가고 있다.한 미국 목사의 계획에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요르단, 이라크, 쿠웨이트, 바레인 등 전 세계 이슬람권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이집트의 대표적 이슬람그룹인 무슬림형제단은 ‘미국정부가 극악한 범죄에 대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모든 무슬림이 각국의 정부를 압박해 미국 대사를 추방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9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ABC 뉴스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 테리 존스 목사가 코란을 소각하려는 행위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국과 유럽의 도시에서 기꺼이 자폭을 감행하도록 잘못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죄는 인간이 짓는 거지, 죄없는 책을 왜 불태워?” 싶다.동서양의 역사에서 애꿎은 책을 불태운 정권이 얼마나 짧은 시간에 무너지고 말았는가.대표적으로 중국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제가 기원전 213년에 법가와 농, 의, 복서를 뺀 모든 사상가들의 책을 산더미처럼 모아서 불사르고 유생들을 생매장한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있다. 불로장생의 헛된 꿈을 꾸던 진시황은 59세로 병사하고 진나라는 통일국가가 된지 불과 15년만에 한나라 유방에게 망했다.


근대로 와서는 1933년 5월 10일 나치 돌격대가 베를린 아우구스트 베벨 광장에서 2만여권의 책을 불태우는 독일판 분서갱유를 일으켰다.유대인 말살정책을 편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세계2차대전까지 일으켰고 1945년 패전
과 함께 망해버렸다. 나치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불과 12년 존재했으며 당수 히틀러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그 광장의 기념물 동판에 독일의 유명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책을 불사르는 곳은 결국 인류도 불태울 것이다“는 가슴 서늘한 말이 새겨져 있다.그렇다고 해서 코란을 불태우겠다는 미국의 테리 존스 목사가 리더십이 강해 추종자가 많다거나 남달리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도 아닌 것같다.

8일 그 교회의 전 신도와 딸은 ‘존스 목사가 자신의 가구 공장에 무급으로 신도들을 고용하고 만약 순종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벌한다며 정신적 폭력을 휘두른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주장한 것을 보면 크레딧에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그런 그가 왜 그런 충격적인 아이디어를 내었을까. 반이슬람 극단주의자로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오바마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겠지만 그 방법이 저급하고 비열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또 왜 코란 소각 후 일어날 후폭풍은 예측하지 않았는가 싶다. 안그래도 9.11이후 이슬람에 대한 갈등은 커져있지 않은가.

얼마 전에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불과 두 블럭 떨어진 지점에 이슬람 모스크 건립 계획이 추진되면서 뉴요커들의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뉴욕시 랜드마크 위원회가 15층짜리 이슬람 사원을 짓도록 승인했고 맨하탄 개발과 종교적 화
해라는 명분 아래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도 적극지지 했다지만 건립현장 인근에서는 연일 찬반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에서 선거이슈로까지 등장하고 있다.또한 퀴니피액 대학 여론조사 연구소가 뉴욕주민 1,497명에게 조사한 결과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 방안에 응답자 53%가 반대했다.

안그래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이 깊어져가는 이 판국에 코란 성경을 불태워서 어쩌자는 건가. 9년전 무너지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직접 눈으로 본 우리로서는 폭력, 자살테러, 순교 등을 남발하는 극단주의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귀담아들을 가치도 없이 자극적인 이런 말들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자. 더 이상은 언론도 보도자제를 바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