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한국 기득권층 해도 너무 한다

2010-09-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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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아는 분의 딸이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한국에 가서 여러 해째 활동하고 있다. 이 젊은이는 어렸을 때 미국에 이민와 자라면서 늘 공부를 마치면 자신이 배운 실력과 능력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 자그마한 힘이나마 일조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1.5세 한인이다. 얼마전 그녀가 잠시 미국에 왔다 가며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미국에서 왔다 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든, 의견이든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고, 무슨 일이든 저희들끼리만 주고받고 해서 너무나 어려워요. 그래도 저는 어떻게든 나의 고국에서 뜻을 펼쳐볼 생각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돌아가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런 이상한 구조속에서 과연 그녀의 생각처럼 그의 희망과 포부가 잘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요즘 연일 한국에서 보도되고 있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특혜를 받은 사실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청문회에서도 보았듯 병역특혜,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는 기본이고, 자식까지 특별입학, 특별채용시키겠다고 하는 일이 그동안 한국에서는 기득권자 사이에 비일비재해 왔다는 점에서다. 그러다 보니 힘없는 부모를 가진 자녀들은 제대로 어디 취업도, 입학도 하기가 쉽지않은 실정이 돼버렸다. 기득권자들의 자녀가 가진 나머지 가지고 코피 터지게 싸우고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에 공정한 사회를 위해 권력층 비리, 부패 등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힘있는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스’를 강조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총체적으로 썩은 나무를 바른 나무로 다시 회생시킬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근본적으로 국회가 다 비워야 하고 장관이 다 물러나야 하며 공무원들도 모두 자리를 비워 판을 다시 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일국의 장관이 자신의 딸을 특별채용하겠다고 노골적으로 편법까지 쓸 정도니 더 이상 할말이 뭐가 있는가.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갖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땀흘려 일하는 소시민들은 어떻게 하라고... 한국의 지도층들은 알고 보니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하나같이 모두 썩고 부패했고 다 악취가 진동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은 젊은이들의 힘과 용기, 그리고 희망, 하면 된다는 불굴의 도전의식을 짓밟았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나 저제나 짝사랑하는 한국의 실상인가.

최근 낱낱이 드러나는 권력층의 비리는 한국의 나무 전체가 썩어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이번에 유장관의 딸 사건을 계기로 외교부에 특별 채용된 자녀가 알고 보니 현재 7명이나 된다고 한다. 또 외무고시 합격자중 자녀비율이 지난 6년동안 41%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득권자들이 권력을 십분 이용해 끼리끼리 봐주고 얻어먹고 누리며 살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해외거주 한인들은 허탈감과 공분을
느낀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 바뀌지 않는 한국의 혈연, 지연, 학연의 병폐는 다 이런 식으로 윗물이 맑지 않아 그대로 흘러내려오면서 생긴 소산이다. 한국은 이제 총체적으로 썩은 뿌리를 뽑아내고 부패해서 냄새나는 시궁창의 물을 갈지 않으면 그 곳에서 자라는 새싹이나 어린 물고기가 죽게 되어 있다.

‘공정한 사회, 태풍분다’ 어제 한국 전송판 기사제목은 말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에 새바람이 이는 전면적인 대수술이 단행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은 모두 다 해먹다가 재수없어 걸리면 희생양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한번 떠들썩하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그런 일이 안되기를 바란다.
해외에 사는 우리는 애국가만 들어도 눈시울을 붉히고 현대차, 기아차, 메이드 인 코리아 상표만 보아도 언제나 가슴이 울렁일 만큼 내 조국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는 해외 한인들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라. 한국에 간 그 젊은 여성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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