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가을의 시작

2010-09-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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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9월, 가을의 문턱이다. 그런데도 더위는 가시지 않고 여름날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하다. 유난히도 올해는 다른 해 보다도 더위가 더 심했다. 연일 내리쪼이는 불볕더위로 시시비비가 엇갈렸다. 여름 한 철 시원한 것으로 손님을 끄는 아이스크림 분야나 에어 콘, 혹은 비치, 즉 해변 가의 먹을 걸이 같은 장사들은 아주 잘 됐을 것이다. 반면 더위로 인해 손해를 본 장사들도 있었을 것이다. 뜨거운 것을 팔아야 하는 가게 같은 곳은 장사가 덜 되었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한 편이 이익을 보면 또 한 편에선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것이 세상사임이야 다 아는 사실이다. 다 같이 이익을 보고 사는 세상살이란 퍽 드믄 것
같다.

9월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 시를 평하는 평론가는 “진실 된 삶을 위한 절대 고독의 추구, 생명에의 외경감과 겸허함, 절대 고독의 경지를 기원하고 있다”고 평한다. 또 이 시는 “시와 종교를 거쳐 최종적인 죽음의 자리에 다다르는 삶의 과정을 성숙과 조락의 가을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하기도 한다.
가을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로 우리를 풍요롭게 해 준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가을에 추수를 하여 하늘에 감사를 드린다. 그것이 전통으로 된 것이 한국에서는 추석맞이다. 음력으로 8월15일이며 올해는 9월 22일이 추석이 된다.


추석의 유래는 “추석 무렵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익은 곡식을 한 줌 베어다가 안방이나 중방, 기둥에 걸어 놓고 다음해의 풍년을 기원하고 호남지방에서는 그 해 난 올벼를 조상에게 바치는 제를 지내기도 한다”고. 미국에는 추석은 없고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이 있다. 연방 공휴일로 정해져 온 국민이 가족끼리 모여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추수감사절의 기원도 추석과 비슷하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인 미국으로 들어온 후 농사를 짓고 첫 수확을 하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린 데서 유래됐다. 여기서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늘의 태양에서 내리 쪼는 빛과 비를 통해 내려지는 물이 없다면 농사를 지을 수 없기에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빛과 물은 모든 생명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다. 빛은 무상으로 하늘의 태양을 통해 비추어진다. 물은 비를 통해 이것도 무상으로 뿌려진다. 물과 빛은 식물의 광합성에 절대적 역할을 한다. 물과 빛이 없으면 식물은 자랄 수가 없다. 물과 빛이 없다면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천혜를 받는 지구의 모든 생명들이 하늘에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다. 우리가 살아 있음은 우리가 잘나서 살아있음이 아니다. 모든 것이 다 하늘의 덕이다. 그러나 그 덕을 잊고 사는 것이 인간임에도 하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빛을 주고 때를 따라 물을 내리기도 한다.

빛과 비를 통해 뿌려지는 물은 값이 없어 인간들은 그 절대 가치를 잊어버리고 산다. 빛뿐이랴. 공기도 있다. 공기도 값없이 들여 마시고 산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런 은덕들을 통해 생명들은 유지된다. 참으로, 1년 내내 하늘에 감사제를 드려도 부족할 판이다. 9월 초. 더위도 서서히 물러갈 것이다. 천고마비, 즉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 될 것이다. 풍성한 계절에 우리의 마음도 풍성해졌으면 한다. 마음의 풍성이란 곧 감사의 마음이다. 하늘에 먼저 감사드리자. 그리고 ‘가을의 기도’를 따라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는 계절이 되게’ 해 보자. 독서다. “가을에는 한 사람을 택하여 사랑하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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