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너 자신을 알라”

2010-09-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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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동안 시끄럽던 한국의 국회 청문회가 결국 총리와, 두 명의 장관후보를 낙마시키는 것으로 종료됐다. 그 결과를 보면 옳고 그름의 잣대로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욕심같아선 한 두명 더 낙마시켜야 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 청문회를 보면서 느낀 것은 무엇보다 후보들이 모두 욕심에 눈이 멀어선지 자기 행동에 대한 잘 잘못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라의 국정을 맡겠다는 지도자들이 모두 자신의 그릇된 행적이나 말과 행동에 대해 어떤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도 솔직히 없는 눈치였다. 한마디로 그들의 심한 도덕불감증은 자신의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나 기준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
였다. 걸리면 말고, 안 걸리면 아무렇지 않은 듯, 아주 태연하게 잘 해먹겠다는 식이다. 이런 착각이 또 어디 있는가. 자가당착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착각 속에 살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하는 말과 행동, 삶의 행적들이 남을 힘들게 하고 주위를 시끄럽게 하고, 더군다나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말과 행동은 사회에 분란을 조성하고 국가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소위 객관성이 결여된 자가당착적인 논리의 결과이다. 흔히들 말하는 ‘네가 하면 불륜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무조건 내가 하는 것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그르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서 나오는 모순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우리는 어느 정치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얼마나 착각속에 살고 있는지 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대에 오른 후보들에게 칼날을 들이대고 하나하나 난도질을 했던 위원들은 과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가? 그들도 마찬가지로 무대에 섰을 경우 똑같은 절차에서 어쩌면 이들보다 훨씬 더 심한 공격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루도 멀다하고 드러나는 공직사회 전반에 미친 한국의 부패상황과 분위기로 볼 때 사정의 칼날이 목에 들어올 경우 이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우리가 보는 시각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자신은 위장전입을 하면서 한 때 타인의 투기를 비판한 글을 써 엄청난 수모를 겪거나 지난 청문회때 본인은 매우 엄격한 잣대로 들이댔던 후보중에 자신에게는 매우 관대하다는 비판을 들은 후보도 있었다. 제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가시만을 들춰대다가 아주 혼줄이 난 케이스다. 이들은 실제로 다른 사람이 그런 자리에서 같은 내용으로 검증받는 광경을 보았다면 분명 법에 어긋난다, 도덕적으로 문제있다. 거짓이 심하다 하면서 저런 후보는 즉각 사퇴해야 된다고 목청
을 돋우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검증대에 섰을 때는 또 이런 저런 이유로 그랬고, 못했고, 그래서 미안하고 죄송하다 하면서 차후에는 이런 일이 없겠다고 하며 아주 멀쩡하게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와 행적 등을 둘러대지 않았는가.

이번 청문회도 여니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총리나 장관이 되려면 적어도 위장전입, 병역특혜, 세금탈루 등은 모두 기본적으로 한 두가지 정도는 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나의 생각도 착각일까? 어느 것이 맞는 건지 도무지 헷갈린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 무엇인가.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모순됨을 말함이다. 즉 말의 질서와 생각이 스스로 뒤엉켜 논란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논란을 회피, 자기 생각으로 귀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자가당착의 오류는 갈수록 심각한 수준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수용력과 열린 마음,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사고와 말, 행동만이 자가당착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번 청문회에서 얻은 교훈이다.

9월이 되면서 풍성한 가을의 냄새와 향기가 벌써부터 코끝에 느껴진다. 머지않아 황금벌판의 고개숙인 벼이삭이 우리에게 바른 생각과 옳은 행동, 그리고 겸양의 미덕을 가르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너 자신을 알라’고.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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