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그마한 즐거움

2010-08-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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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뉴저지한인회 수석부회장)

이른 아침, 아들로부터 억지로라도 “아빠!”라는 호칭을 듣는 것도 즐겁고 엄청 피곤한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잠옷바람으로라도 아버지의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억지모습을 연기하는 것도 참으로 즐겁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반 전,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다가 전문 도박사의 길을 걷겠다는 아들의 황당한 계획을 들었을 때 이민 1세인 내가 미국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여기서 태어나 자라난 아들이 미국생활에 대해 더 잘 알겠지... 한심한 생각이라는 것을 가슴속에 숨기고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전문도박사도 직업이라구?” “겜블러가 되려면 도박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도박 자금이 필요한 거 아냐?” 약 반년간의 방황이 거의 끝나가는 마지막 달에 아들이 나를 앉혀놓고 마지막 조건으로 내건 내용이다.한달 동안은 아들애가 집에 있던 밖에 있던 무얼하든지 아무런 간섭과 제재도 않기로 하고 일정금액을 도박 거사 자금(?)으로 밑천을 대주고는 한달을 기다렸다. 나와 약조한 한달이 거의 끝나갈 무렵. 신경이 무척이나 사나워진 모습의 아들이 자기 누나와 함께 기술대학을 찾아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그래 이 녀석아, 너 라구 별 수 있냐? 이 불경기엔 그저 확실한 전문기술이 최고야!” 온 가족이 나서서 아들애의 적성에 맞고 괜찮은 전문분야의 기술대학을 찾아보기 시작하여 다니기 시작한 의료기술대학을 적당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아들은 운 좋게도 인턴쉽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버스 정류장까지는 불과 5분 남짓의 거리지만 가는 동안에 아들과 나누는 간단한 일상대화들이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병원생활에 대해 신나서 설명하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내자신이 출근하는 기분이다.저녁에 가족들이 식탁에 모여 앉아 아들애가 그날 병원에서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는 것을 듣는 것이 요즘 나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병원 근무자들이 친절하냐? 점심 샌드위치는 부족하지 않냐? 서브웨이 갈아타기는 힘들지 않냐?”

인턴쉽 기간이 끝나면 그 병원에 직업을 갖는 것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아들의 각오를 들으니 2년전 그 황당했던 도박자금 대출(?)을 해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몇일 전에는 집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서도 맨하탄 가는 버스가 선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들에게는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아침 잠 좀 손해 보더라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들녀석의 운전기사 노릇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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