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2010-08-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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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세상엔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 함은 인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무얼 얼마나 알겠는가. 인생이 우주의 크기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인생이 몸속의 피의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가. 또한 나 자신이 언제 죽을는지를 그 누가 알 수가 있겠는가.
아버님이 돌아 가신지가 어언 14년이 되었다. 91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홀 홀 단신으로 90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어머니에게 큰 소리 치지 않으셨다. 여기서 홀 홀 단신이라 함은 아버지가 나이 10 몇 살에 양 부모를 잃고 홀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경상도 울산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고아가 된 뒤에 강원도에 와서 살았다.

강원도 영월에서 진사의 딸인 어머니를 만나 30이 훨씬 넘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낳은 자식들이 열 하나다. 하나는 국토건설단에 끌려가 행방불명 됐고 또 하나는 6.25 전시에 굶어서 병들어 죽었다. 죽은 아이는 지금까지 살았다면 64세가 될 것이다. 영혼이라도 살아 있다면 지금쯤 어디에 그 영혼이 있을까.
어머님의 연세가 88세, 한국 나이로는 89세다. 살아 계시면서 매일 매일 남은 자식들과 손주들과 증손주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여기서 손주라 표현함은 손자와 손녀를 같이 나타내는 것이다. 아버지가 혼자되신 후에 어머니를 만나 지금까지 낳아놓은 직계 후손들만 거의 50여명에 달한다. 그 후손들 가운데는 종교인도 여러 명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또 한 사람을 만나 50 여명의 후손들을 낳게 되었다.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적은 한 사람의 인생이 살아 있어서 또 한 사람을 만났다는 기적이다. 아버지가 고아가 되었을 때 좌절하고 낙망하여 자살이라도 했다면 이런 기적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생명은 귀중한 것이요 기적을 낳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인생이 뭘 모른다고 하는 것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기에 그렇다. 가령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복권이란 것이 필요가 없다. 복권이란 복권은 그 사람이 다 차지하여 세상에 둘도 없는 갑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다 산으로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바다로 들어가야 하나.

그러기에 인생이란 즐거울 수 있다. 한 치 앞에 또 다른 아무도 모르는 즐거움이 기다릴 수 있기에 그렇다. 오늘까지 절망과 낙망 속에 살았더라도 또 내일을 향하여 소망을 갖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생명체가 바로 인생이다. 이렇듯, 다른 동물들이 가지지 못한 귀중한 것을 인생은 갖고 있다. 그것은 인간만이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복음이다. 산에 올라가 나무들을 본다. 나무들의 키는 사람의 수십 배에 달하기도 한다. 나무들 중에는 죽은 나무도 있고 살아서 가지를 쭉 쭉 뻗으며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나무들도 있다. 이 나무들은 어디서 왔는가. 하늘에서 떨어졌나, 아니면 지하에서 솟아났나.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고 땅에서 저절로 솟아나지도 않았다. 그러면 어디서 왔나.

어디서부터 인지는 몰라도 작은 씨앗에서부터 왔다. 작은 씨앗은 어디서 왔을까. 어느 별에서 왔을까, 아니면 달에서 왔을까. 아니다. 우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구의 그 한 복판에서 왔다. 그렇다면 지구는 어떤 곳에서 태어났으며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과 생물들은 또 무엇인가. 이것을 알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노벨상 100개를 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연수가 많으면 100이다. 100년 동안 살면서 무엇을 알다 가겠는가. 자기 자신도 모르고 가는 인생에게 무슨 자존심이란 게 남아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게 또한 인생이자, 인간이다. 우주에 떠 있는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에게 물어 보라. 인생 같은 별이 있는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생명은 우주하고도 바꿀 수 없다.

세상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 그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파헤치는 생명이 있다. 인생들이다. 바벨탑이 허물어지듯, 또 허물어질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그냥 갈 것인가. 어머님도 언젠가는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갈 것이다. 우리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언젠가는 갈 것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들과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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