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산소가 필요한 이민생활

2010-08-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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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인들은 미국에 대부분 잘 살아 보겠다고, 또 자식 교육 잘 시키겠다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10년, 20년, 30년 살고 보니 남은 것은 다수가 깨어진 가정이요. 기쁨이 없는 생활이다. 모습은 어느덧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에다 자기도 모르게 깊이 패인 주름, 게다가 웃음은 어디갔나, 한인들의 얼굴에는 웬지 근심과 수심이 그득하다. 생활에 지치고 찌든 모습, 이것이 지금 우리
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민와서 죽어라 일만 하다 보니 스트레스와 피곤함, 그리고 권태감에 대부분 삶의 흥미를 못느끼고 있다. 집집마다 보면 경제적으로는 그런대로 살만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잘 자랐다고는 하지만 부부끼리, 부모 자식간에 문제가 없는 가정이 거의 없어 보인다. 생활에 활력소가 되는 기쁨이 없고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눈만 뜨면 반가운 소식은 별로 없고 월 페이먼트 마감날짜까지 돈 내라는 독촉 메일 뿐이다. 제대로 한번 쉬지도 못하고 벌어도, 벌어도 페이먼트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피곤한 삶,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과 직장 일, 죽자사자 해도 늘 생활의 여유가 없고 시간없어 여행도 제대로 못가는 삶, 도무지 생활이 기쁘고 즐거울 리 만무하다. 이런 삶에서 무슨 웃음이 나오겠는가. 감동과 기쁨은 더더욱 기대하지 못할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던 생활인가? 우리는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잃고 살고 있다. 웃음과 기쁨, 감동이 없는 생활은 돈이 있건, 없건 실패한 인생이다.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이민생활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아야 한다. 사는게 뭐 별거인가. 사람들은 항상 저 산 넘으면 파랑새가 있겠지 하며 그걸 잡겠다고 열심히 뛰고 또 뛴다. 그러나 산 너머 산이라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고 하루도 걱정없는 날이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삶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마저 어둡고 우울하다면 이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한 지인이 찜통에서 갓 쪄낸 것 같은 따끈따끈한 책 두권을 주고 갔다. 한 권은 이외수의 ‘하악 하악’ 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부제는 ‘팍팍한 인생 팔팔하게 살아보자’를 주제로 한 생존법. 그런데 이와 다르게 제목은 얼마나 해학적이고 기상천외한지 책 속에 절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역시 언어유희의 달인인 작가답게 내용도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 하나하나마다 퍽이나 감동적이고 기발함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또 한 권은 이해인수녀의 신작시집 ‘행복은 깨어있네’ 제목만 보아도 마음이 신선하다. 물론 그 내용도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해맑고 순수하기 그지없다. 따스함이 들어있는 주옥같은 시와 아름다운 문장의 향기나는 글들.


이 책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이 세상이 아무리 살기가 힘들고 버거워도 우리가 이런 흐뭇함과 즐거움, 그리고 웃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삶에서 오는 기쁨과 감동은 꼭 멀리 있거나 큰 것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그만 곳에서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우리의 생활이 단지 바쁘고 피곤하다 보니 관심을 쓸새 없고 무심코 지나가게 되어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코믹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나 드라마, 책도 많고, 그밖에 스쳐지나가는 감동적인 사건이나 일,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산소를 마신 것처럼 신선함과 맑은 기분을 느낀다. 생각지 않게 사소한 것에서 경직됐던 얼굴에 웃음을 되찾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을 지탱하는데 산소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생활에도 맑은 공기의 산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생활을 밝고 유쾌하게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우리가 산소를 찾아 마셔야 하는 이유다. 산소를 통해 정신적 목마름을 해갈하고 삶의 윤활유를 얻어 우리를 짓누르는 이민생활의 무게를 덜어야 한다. 아무리 생활이 고달파도 한 순간 한 순간을
머플러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웃으며 감동하며 기쁨으로 어차피 겪는 이민생활, 기죽거나 의기소침하지 말고 양 어깨 활짝 펴고 팔팔하게 살아보자. ‘하악 하악’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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