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루함이 만병의 근원

2010-08-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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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런던에 있는 ‘국제 유행병학회’는 35세-55세의 남녀 7,500명을 상대로 질병 발생의 원인 조사를 하였는데(1985-1988년) 지루함이 만병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특히 심장병의 경우 지루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에게서 훨씬 많은 환자가 생겼다고 한다.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식욕이 감퇴하고 운동하기도 싫어한다는 것이다. 반면 부지런한 사람은 힘이 더 들것 같지만 발병률이 매우 적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부지런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수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하여 부지런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컬럼비아대학 의료센터가 캐나다에 가서 성인 1,700명을 상대로 1995년에 기본조사를 하고 10년 후 2005년에 다시 조사를 하였는데 발병률이 145대 1이었다. 즉 지루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 145명이 발병할 때 즐겁고 부지런히 산 사람은 한 명이 발병하는 비례로 부지런한 사람의 건강도가 높았던 것이다.

뉴저지 주에서 평생을 살며 연구에 몰두한 토마스 에디슨은 “나에게 하루 여덟 시간 노동제나 출퇴근 시간 같은 것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내가 부지런히 일한 것은 즐거우니까 그렇게 산 것이다. 최고의 행복은 보수(報酬)가 주는 것이 아니고 성취의 기쁨을 누릴 때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의 작업관(作業觀)은 “하나님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것이었다. 일의 목적이 신의 계획에 참가한다는 높은 수준을 가리키는 말이다. 칼럼니스트 페리(H. C. Ferree)씨가 꿈을 꾸었다. 저승에 갔는데 정말 아름답고 좋았다. 흰 옷
입은 사람에게 도와드릴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골프를 치고 싶다고 하였더니 저승에는 골프장이 없다고 하였다. 그럼 마당에 작은 채소밭을 만들겠다고 하였더니 먹을 것이 풍부하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할 일도 없는데 어째서 여기를 천당이라고 부르는 거요?” 하고 항의했더니 흰 옷 입은 사람이 “당신은 지금 천당에 온 것이 아냐!”하고 소리 질렀다고 한다. 이것은 실제의 꿈이 아니라 페리 씨가 쓴 우화이다. 쉬고 노는 것이 행복 같아도 사실은 부지런히 일할 때가 행복하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부지런하다는 말과 시간을 아낀다는 말은 거의 같은 의미이다. 시간이란 늙어갈수록 빨라진다. 그것은 시간의 중요성을 늙어갈수록 더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려서 울고 웃기만 할 때 시간은 갓난아이처럼 기어간다. 청년이 되어 꿈을 꾸고 힘차게 움직일 때 시간은 활보한다. 그리고 성숙한 장년이 되면 드디어 시간은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살
이 깊어지면 이제 시간의 속도에는 관심이 사라지고 자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90을 넘기는 것이 장수(長壽)인가? 그렇지 않다. 같은 시간이라도 즐겁고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장수이다. 실패를 정의하는 한 마디가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이다. 시간이 없어서 해야 할 일, 갖추어야 할 준비를 못해서 실패하였다는 뜻인데, 사실은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시간 사용에 있어서 그 우선순위가 달랐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라는 같은 양의 시간이 주어진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 시간들을 분배하였느냐에 따라 후회와 만족, 실패와 성공이 결정된다. 시간이 몹시 귀중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이제 인생의 가치를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일한 생활 태도는 시간을 지겹게 만든다. 부지런한 생활이 시간을 버는 것이다. 만일 생명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아껴야 한다. 시간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내 시간도 귀중하지만 남의 시간도 귀중하기 때문에 약속시간은 엄수하여야 한다. 어떤 이는 그저 존재하고 어떤 이는 보람찬 생애를 갖는다. 그 차이는 단순히 허비한 시간과 활용한 시간의 차이뿐이다. 재주가 많은 것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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