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인의 인권과 사회의 안전

2010-08-13 (금)
크게 작게
이광영(전 언론인)

좀 지난 얘기지만 지난달 20일자 뉴욕타임즈는 개인의 인권이 먼저인가? 범죄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가? 이 심각한 문제를 다시금 생각게 하는 한 사례를 보도하였다. 에이즈 보균자인 ‘뉴숀 윌리엄즈’라는 33세된 흑인청년은 12년전 앞 뒤 생각 없는 (reckless) 강간을 저질러 적어도 13명의 피해여성들에게 에이즈 바이러스를 옮겨 주었다. 그는 체포되어 12년형을 선고받고 지난달 4월 만기출소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검찰은 3
년전에 제정된 시민 감호법(Civil Confinement Law)에 따라 그의 석방을 반대, 뉴욕주 행형당국은 그를 계속 유치해 두고 있었다. 시민 감호법이란 공격적인 성범죄 자들에게 형기를 마친 다음에도 당국의 판단에 따라 석방하지 않고 감옥에서 평생을 살게 할 수도 있는 가혹한 특별법.

뉴욕주는 20개 주가 이 법을 시행하고 있다. 변호인 측은 윌리엄즈가 유죄를 시인하고 형이 선고된 다음에 이 법이 제정되었으므로 ‘형별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그는 시민감호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주 검찰은 그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여죄들이 계속 드러나 그때마다 내려진 일련의 선고형량이 통산되면서 특별법이 제정되
는 당시에도 성범죄로 감옥에 있었으므로 범죄진행으로 간주하여 적용대상이 된다고 주장, 양측은 치열한 법리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뉴욕주 대법원이 최근 검찰측 주장을 채택하는 최종결정을 내림으로써 그는 다시는 세상구경을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처지가 되었다.


형식 논리상으로나 불소급의 원칙을 천명한 죄형법정주의 이념으로 볼 때 변호인측 주장이 옳고 사법당국은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처자를 거느리고 있고 도 자신이 불치의 에이즈 보균자임을 인식하고 있는 범인이 마구잡이로 선의의 제3자인 여성들을 강간하여 병을 옮겨준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라고 비난받을만한 악행이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면 당국이 전자팔찌를 채우고 아무리 엄한 감시를 한다고 해도 또다른
치명적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인권중시의 입자에서는 에이즈 환자도 인간이다.

죄를 지었어도 법이 정한 벌을 받았으면 됐지 또다시 감옥에 처넣는다는 것은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찰주장에 따르면 윌리엄즈는 성도착증 환자인데다 앞 뒤 가리지 않는 그의 범죄성향으로 보아 사회에 복귀한다면 ‘움직이는 흉기’가 되어 또다른 피해가 우려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높다. 법이 지켜주려는 이익 즉 보호법익을 개인의 인권에 두느냐? 사회의 안전에 두느
냐? 이것은 법철학이 다루고 있는 난제중의 하나다. 지난날 한국의 독재정권시절 형기를 마치고도 반성문을 쓰고 전향을 하지 않는 확신범들을 청
송감호소에 집어넣고 20년 내지 30년씩이나 가둬둔 세계인권역사상 악명 높은 이른바 장기수들이 있었다. 미국의 파렴치범이나 한국의 양심범들 모두 소급 적용되는 악법의 피해자들로 보이나 죄질에서 다르고 입법취지에서 다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