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의 그림자

2010-08-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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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주 한없이 깊고 그윽하며, 아무런 잡티나 잔상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하며, 그리고 철저하게 깨끗하고 깜깜한, 완전 어둠이었다(독자 여러분들도 지금 양눈을 모두 감고 앞에 펼쳐지는 어둠을 살펴보시라.

분명히 여러가지 모양의 수많은 잔상들이 희끗희끗, 그 어둠속에서 명멸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잔상이 하나도 없는 칠흑같이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마치 우주공간의 무중력 상태처럼, 또는 엄마의 태안에 있는 아기처럼 공중에 둥둥떠서 한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으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끝없는 블랙 홀로 천천히 빠져 들어가는 듯한 편안한 기분으로, 비몽사몽간의 아늑한 무아의 지경으로 한없이, 그리고 정처없이 흘러가는 도중, 문득 저 멀리 왼편 아래쪽 구석에서 조그마한 불빛 하나가 “깜빡!” 하며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나듯이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차의 앞 유리창은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난 채 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에어 백은 터져 축 늘어진 자루처럼 운전대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깨어진 유리창 너머로 자동차 후드는 높이 열린채, 그 사이로 엔진에서 “쉬?익!” 소리를 내며 새어 나오는 하얀 증기가 보였으며, 그 뒤에는 한밤중에 가만히 서 있는 자신을 들이 받은 내가 괘씸하다는 듯이 시커먼 전봇대가 험상궂은 모습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교통 사고였다! 그것도 자정이 거의 다 되어가는 늦은 밤에, 집까지 불과 반마일도 남지 않은 주택가에서, 길가의 전신주를 들이 받은 대형 교통사고였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움직여 차에서 빠져 나오려 했으나, 차의 문이 잘 열리지 않고 몸도 잘 움직이지 않아, 어찌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차 안에 앉아있었다. 마침 집안에서 무언가 크게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앞집의 주인 내외가 잠옷바람으로 뛰어나와 보더니 교통사고가 난 것을 알고 얼른 앰블런스를 부르고 구조를 요청하는 눈치였다.

그제야 정신을 되찾기 시작한 나는 힘을 내어 차문을 발로 밀어 열고 밖으로 나와, 도로 옆의 커브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유지하려 하였다. 잠시 후 앰블런스와 경찰이 도착하여 나의 상태와, 교통사고의 경위를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구조요원이 나의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고 눈동자도 들여다 보고 또 일어서서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라는 등, 여러가지 조사를 하더니 “다행히도 괜찮다”고 말하였다.

경찰은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내게 물었다. 내가 “운전도중 피곤해서 깜박 졸았다”고 이야기 하자 경찰은 혹시 내가 음주를 하지는 않았는지 자세히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는 사고난 차의 상태를 여기저기 살펴 보았다. 차는 전봇대에 얼마나 세게 부딪쳤는지, 앞의 범퍼가 약 1피트 정도 안으로 휘어 들어와 U자 형태로 구부러져 있었다. 엔진과 변속기 등, 차안의 다른 부품도 그 만큼 뒤로 밀려 들어 오면서 차는 완전히 망가져 재생불능이었다. 경찰이 다시 내게 와 “너는 참 운이 좋았다. 이 차가 운전자 쪽으로 6인치만 더 치고 들어와 부딪쳤더라면 너는 크게 다치거나 죽을뻔 했다.

그리고 이 차가 매우 튼튼하고 강하여 충격을 많이 흡수했고, 에어백과 안전벨트가 너를 살렸다” 라고 말하였다. 약 한시간 정도에 걸쳐 사고를 수습하며 아내에게 연락하여 집에 도착한 나는, 왼쪽 어깨가 뻐근하여 옷을 벗고 거울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어깨에는 내 차가 얼마나 세게 부딪쳤는지, 안전벨트 자국이 왼쪽 어깨로 부터 가슴부위로 가로 질러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의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하면서 언덕을 내려오는데, 도로의 전봇대들과 가로수들이 전과는 달리 모두 새로운 공포의 대상으로 보여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하였다. 모든 전신주들과 가로수들의 뒤에 시커멓게 숨어 도사리고 있는 검은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라도 틈만 나면 나를 잡아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 이 사고는 15년전에 발생했던 사고입니다.

(310)968-8945


키한/뉴스타 부동산 토렌스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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