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절름발이 인생

2010-08-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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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얼마전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인데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보면 ‘단테의 신곡’을 영어로 읽는다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어린이들이 운동화 끈도 하나 자기 혼자 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다 매주기 때문이란다. 이 어린이들은 평소 공부만 했지 운동화 끈은 물론, 다른 어떤 것도 자기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하면 공부는 최정상급이었지만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인성이라든가,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기초적인 활동능력이나 적응력 따위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름발이 인생이었다. 또 다른 한국의 TV프로그램에서는 40, 50대 중년 남녀들이 젊어지겠다고 난리들을 치는 모습을 보았는데 참으로 기가 막혔다. 이들이 벌써부터 나이가 많이 들었다며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부지런히 해야 겠다면서 너도 나도 헬스클럽이네, 사우나네, 맛사지네 아니면 조깅이네, 등산이네 하면서 얼굴짱, 몸짱을 만드느라 아우성들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느라 아무 것도 못해봤다며 이제부터라도 남은 인생 즐겨야 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생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사는 것일까? 이것은 사실 표면에 드러난 것일 뿐,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정신적인 만족감과 행복감과 비례한다고는 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여행, 좋은 물건, 좋은 운동이라 할지라도 그것만 하다 보면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허탈함과 공허감만 남는 생활이 그 무슨 의미가 있으며 즐거움과 행복이 있겠는가, 요즘 이곳 한인사회도 보면 나이든 사람이나 은퇴한 사람들 중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남은 시간 부지런히 놀고 먹고 해야 한다며 남은 돈 실컷 쓰고 인생을 마감해야 한다면서 조급해 하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그동안 번 돈 신물이 나도록 여행 하고 좋은 것 실컷 먹고, 죽어라 골프치고, 안해본 것 다해보고 하면서 인생을 마감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게 되면 꼭 그렇게 살아야 인생을 정말 잘 살고, 잘 마감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경우는 보기가 너무 안쓰럽고 너무 과해서 추해보이기까지 한다. “내 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래?” 한다면 무어라고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 살기보다는 이왕이면 남은 인생 좀 더 멋지게 보낸다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떤 한 비즈니스 맨은 그동안 열심히 일해 돈은 많이 벌었는데 정신적으로는 늘 허탈했다고 한다. 그는 돈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한 주의 반은 업소에서 보내고, 나머지 반은 자기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한다. 시간을 내고 보
니 이렇게 다른 세상이 있고 넓은 줄을 몰랐다며 이웃 봉사 등으로 정신적 풍요로움과 만족감을 얻기 위해 남은 인생 보내겠다고 말했다.

돈이 많거나 시간이 많다 해서 무조건 먹고 마시고 놀고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더 값지고 의미있는 생을 보낼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인들이 이민와서 너무 일만 열심히 하고 돈만 벌다 보니 나이들면 못해본 것 해보겠다며 노는 것에 사생결단하듯 매달리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문제는 다르다.하지만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만족을 느끼기는 불과 몇 차례, 하루 이틀, 길어야 1, 2년이면 끝이
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한 가지만 계속해서 먹으면 싫증이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무엇이든 의미있는 일을 곁들일 때 만족감이 있는 법이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기부릴레이를 하는 이유는 꼭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 때문만에 하는 것일까. 이들이 가진 재산을 사회에 내놓음으로써 베품을 통해 자기 자신이 정신적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가진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물질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나눔을 통한 정신적인 풍요와 만족을 느낄 때 삶의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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