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빌 클린턴의 눈물

2010-08-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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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현 국무장관 힐러리의 외동딸 첼시의 결혼식은 눈물의 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 감동은 아빠가 신부와 춤을 추는 순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집가는 딸의 손을 잡는 순간 빌의 눈은 젖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위장하려고 억지로 웃어 보이려는 것이 오히려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여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하객들에게 안 보이려고 신부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 속삭였는데 그 순간 신부도 울음을 터트려 5백 명의 하객이 모두 치솟는 감정을 참으려는 눈물의 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딸의 결혼식에서 부모가 우는 것은 세계 공통인데 엄마보다 아빠가 더 운 것은 특이하다.

서구사회의 결혼 풍습 중에 시집가는 딸에게 엄마가 진주를 주는 관습이 있다. 이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딸이 시집가서 흘려야 할 눈물을 상징한다. 왜 하필 진주일까? 그것은 진주의 생성과정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 진주는 바다에서 나온다. 진주는 땅에서 캐지 않는 유일한 보석이다. 진주는 ‘아비큘리데’(aviculidae)라고 불리는 특별한 굴속에서 생겨난다. 굴속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굴은 ‘나카’(nacre)라는 물질을 만들어 모래알을 감싸기 시작한다. 나카가 많이 덮일수록 진주는 커지고 값도 높아진다. 나카는 아주 작은 양이 천천히 생성되기 때문에 큼직한 진주는 몇 년이 걸려야 만들어진다.

그런데 굴속에 들어간 모래알이라고 해서 모두가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래알이 들어오면 굴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하나는 나카를 생산해서 힘겹고 긴 코팅작업을 시작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무시할 경우 굴은 모래 때문에 병들어 죽을 수도 있다. 굴이 당면하는 이 두 개의 선택이란 침입한 모래알의 도전을 받아들여 진주를 만드느냐,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 버려 피차 망하느냐 하는 선택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 모두의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도 여러 종류의 모래알이 자주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도전과 건설적으로 받아들여 진주를 만들고, 어떤 이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여 차차 곪아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는다.


예언서 연구의 권위자인 브루거만(Walter Brueggermann) 박사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예언자들이란 사람과 민족들을 울게 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사람은 운 뒤에야 미래를 향한 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어의 ‘울다’와 ‘울림’이 같은 어간(語幹)을 가졌다는 데에서 우리 조상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초상집에서 여럿이 곡을 하는 것도 고인에 대한 애도보다는 유가족과 문상객들이 슬픔을 나누어 가지는 울림이라는 점에서 더 갚은 의미가 있다.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를 오래 동안 담임했던 명 설교가 부크너(Frederick Buechner)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난 한 달 사이, 혹은 1년 동안에 당신이 울었던 일을 더듬어 보십시오. 슬퍼서 울었든 기뻐서 울었든 아파서 울었든, 그 순간만이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정직했고 오래 잊어버렸던 당신의 뿌리를 어루만진 순간이었습니다. 그 밑바닥 뿌리에서만 당신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성경에서 가장 짧은 구절은 단 두 낱말로 구성된 “예수는 울었다.”(Jesus wept 요한복음 11장35절)이다. 성경의 장과 절수를 나눈 학자들이 비록 두 단어지만 대단히 중요한 말로 여겨 독립된 한 절로 구획한 것이다. 예수의 유머 감각은 뛰어났었지만 예수가 웃었다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흐느껴 우는 예수의 울음소리와 그의 뺨에 흐르는 눈물줄기는 오빠를 잃은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에게 얼마나 큰 감동이 되었을까! “예수가 울었다.”는 이 한 마디는 예수가 일으킨 사랑의 공명(共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파되어 퍼지는 사랑의 울림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공명을 패스하는 것이 진짜 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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