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부의 격차 심한 러시아

2010-08-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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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 (법정통역)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모스코바에 이르는 리버 크루스(River Cruise)를 다녀왔다. 세인트 피터스버그는 300년 전 로마노프 제국의 피터 대제가 발틱(Baltic)만의 끝자락의 뻘로 된 대지에 건설한 러시아 역사상 최초의 수도이다. 운하로 연결된 도시에 사방에 금빛으로 번쩍이는 러시아 정교회의 오니온 생김의 돔(Dome)들이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이 헤미태지라는 이곳의 대 역사박물관이다. 수백만 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전시물을 가진 세계적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을 비롯해 제정시대의 황궁들을 둘러보았다. 호화의 극치를 자랑하는 제정러시아의 시설이나 유물들은 당시 황족들의 사치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었다.

사방 금으로 디자인된 대형 접견실은 금은보석으로 된 조각품들로 가득 찼고 어느 황후의 방은 호박 보석으로 온 방을 꾸며 놓았다. 황궁뿐 아니라 사적(史蹟)으로 남아있는 러시아 정교회들 또한 금으로 입힌 돔 첨탑에 방안 가득 거의 금으로 장식한 성화들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었다.제정 시대에는 교회의 교구에 지역을 할당해서 세금을 거두어 드리도록 했다고 한다. 아마 봉
건시대의 봉건제와 비슷한 형태였으리라. 운하를 따라 뱃길의 주변은 추운 기후 때문에 양질의 목재 산업이 주를 이루는 울창한 삼림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물길이고 많은 시골 마을을 지나가면서 빠짐없이 눈에 띄는 경관은 역시 금으로 찬란히 장식한 교회의 오렌지 돔이다.


여름철 러시아 방문의 백미(白眉)는 밤 11시가 넘도록 해가 지지 않는지 않는 화이트 나이트의 경험이다. 자정이 거의 가까운 시간인데도 겨우 어둠이 깃들 정도인데 이 시간에 크루스의 갑판 위에서 한잔을 즐기는 사치는 운하를 항해하는 최상의 매력일 듯 싶다. 호화와 사치의 극에 이른 황실과 또한 이에 영합한 교회는 봉건 영주 같은 역할을 맡아하면서 일반 백성들로부터 많은 수탈이 있었다고 한다. 1917년 레닌의 공산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수탈당하는 백성들의 반란적 지지가 큰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공산당 지배아래에서
종교 탄압 속에서도 깊은 신앙의 정신은 이어진 모양이어서 교회의 성소에서 울면서 기도드리는 많은 교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신앙 없는 공산당 나라로만 알고 있던 러시아에서 이런 신앙인들을 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모스코바에 이르는 운하는 수많은 강과 호수를 연결하고 열대 여섯 개가 넘는 갑문을 통과하면서 150여 미터나 되는 물높이의 차이를 맞추도록 건설한 엄청난 대 역사(役事)였는데 독재 스탈린이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락에 잡혀 있는 인력과 전쟁 중에는 전쟁 포로들을 이용해서 이 대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비극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운하이긴 하지만 오늘날 러시아의 2대 도시를 운하로 연결하는 이 거대한 운하시설이 과연 유용한 건설이었는지 그 타당성은 잘 알 길이 없다. 모스코에 이를 때까지 여섯 밤낮을 항해하는 동안에 통과하는 화물선을 단 한 척도 본적이 없다.

모스코바의 가장 중심인 크렘린의 아모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제정시대의 유물 또한 금은보화로 모든 것을 장식한 호화와 사치의 극치였고 대 교회들 역시 황금빛의 돔과 그 내부는 거의 전 면적을 금으로 치장한 성화들로 가득하다. 붉은 광장 옆의 굼(Gum) 백화점은 뉴욕의 삭스 백화점이 부끄러울 정도로 호화의 극치를 이루지만 상품을 구입하는 손님은 거의 보지 못했다. 서민들이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부유층만을 위한 별 세계의 백화점인 듯 했다. 러시아가 서방식 자본주의 사회로 변천되면서 생겨나는 엄청난 빈부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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